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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포툠킨 / 김영준

등록 2020-12-25 15:16수정 2020-12-26 02:04

김영준ㅣ열린책들 편집이사

러시아어는 표기가 까다롭다고 하지만, 그중 ‘포템킨’처럼 골치 아픈 이름은 드물다. 영화 <전함 포템킨>으로 익숙한 이 이름의 현지 발음은 ‘빠쬼낀’ 비슷하다. 국어원이 인정하지 않는 세 가지, 경음과 모음 변화와 구개음화가 한 번에 튀어나온다. 20여년간 편집 일을 하면서 포템킨, 뽀쫌낀, 포촘킨, 포티옴킨이라는 표기를 다 마주친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뭐가 맞는 용례인지 확인하니 ‘포툠킨’이라 한다. 이렇게 힘들 바에야 모두에게 친숙한 영어식 포템킨이 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문제는 이름 자체에 있지 않은 것 같다. 발음상 이보다 까다로운 예들은 더 있을 것이다. ‘포툠킨’처럼 자주 호출되지 않으니 문제가 안 될 뿐이다.

대표적인 두 용례, ‘전함 포툠킨’과 ‘포툠킨 마을’ 중 무엇이 자주 보일까? 구글 트렌드를 돌려 보면 지난 17년간 전 세계적으로 전자가 6:4로 우세한 사용량을 보인다. 영어권으로 한정하면 ‘포툠킨 마을’이 2:1로 우세해진다. 포툠킨 마을은 거짓스러운 것이면 어디에든 통용되는 만능 어구가 되어가고 있다. 얼마 전 미국 평론가 데이브 히키는 페이스북이 곧 포툠킨 마을이라고 했다.

알다시피 ‘포툠킨 마을’은 18세기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의 지방 시찰에서 유래한다. 여제의 심복이자 연인이었던 포툠킨은 황제의 방문지마다 가짜 마을을 뚝딱 세웠다. 황제가 떠나면 마을은 재빨리 철거되어 다음 방문지로 운반되었다. 역사가들은 이 전설이 과장이라고 보나, 아무튼 포툠킨이라는 이름은 불멸이 되었다. 권력자의 행차 시 가짜 풍경을 깔아놓는 것은 인류 역사만큼 오래된 일인데 불과 200년 전 인물인 포툠킨이 원조이자 대명사가 된 건 부당한 느낌도 없지 않다. 굳이 평가하자면 포툠킨 마을의 핵심은 이동성과 재활용성에 있다. 그 속도감이 현대적이기도 하다. (애니메이션 <월래스와 그로밋>에서 움직이는 열차에 탄 채 앞에 미친 듯이 레일을 까는 광경과 비슷하다.) 대형 야외 세트뿐 아니라 주민인 척 연기하는 부하들까지 동원했다고 하니 포툠킨은 극장 국가의 창시자일지도 모른다.

포툠킨은 주기적으로 우울증을 앓았다. 그때마다 그는 자기 방에서 두문불출하며 누구의 방문도 허락하지 않았다. 한번은 우울증이 너무 오래 계속되어 정부가 기능 마비에 빠졌다. 모든 서류의 최종 결재자가 그였기 때문이다. 한숨을 쉬는 고관들 앞에 슈발킨이라는 하급 서기관이 나섰다. 자기가 모든 서류의 서명을 받아오겠다는 것이었다. 어두운 방에 잠옷 차림으로 멍하니 앉아 있던 포툠킨은 기습적인 방문에 깜짝 놀랐다. 그는 슈발킨이 내민 서류 뭉치에 말없이 하나씩 서명하기 시작했다. 슈발킨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고관들은 앞을 다투어 제 서류를 챙기다가 갑자기 얼어붙은 듯 조용해졌다. 모든 서류의 서명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슈발킨, 슈발킨, 슈발킨…. 이 일화는 발터 베냐민의 카프카론 서두에 실려 있다.

‘포툠킨 마을’의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가짜로 그렇게 진짜를 덮어도 되는가?’ ‘포툠킨 서명’은 그에 대한 답처럼 보인다. ‘괜찮아! 내가 아니더라도 권력을 쥐면 누구든(이름이 슈발킨이든 뭐든) 똑같이 할 거거든.’ 우리는 이런 생각이 주는 무한한 면책의 느낌을 안다. 바보들은 언제나 속아 넘어가기 마련이고, 안됐지만 내 책임은 없는 것이다. 영화 <전함 포템킨>에는 밥 속에 작은 동물들이 있다고 수병들이 항의하는 장면이 나온다. 군의관이 돋보기로 들여다보니 수천 마리의 구더기가 보인다. “아무 이상이 없군!” 군의관의 얼굴은 편안해 보인다. 딱히 자기가 먹을 것도 아닌데 힘들 일은 별로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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