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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우진의 햇빛] 구름방울이 빚어낸 진주

등록 2020-12-27 15:22수정 2020-12-28 02:38

이우진ㅣ이화여대 초빙교수(과학교육)

색상에 민감한 건 어쩔 수 없는 사람의 심리다. 흥건히 젖은 차창 밖 잿빛 풍경으로 우울해지다가도, 비행기가 구름 위로 올라가면 실내 소품과 의상이 햇빛을 받아 자연색을 뽐내면서 활기찬 기운이 돋는다.

구름이 무슨 색이냐고 묻는다면 답을 하기 쉽지 않다. 그때그때 다르기 때문이다. 나뭇잎은 적색 빛을 많이 흡수하고, 녹색 빛은 반사하므로 우리 눈에는 녹색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구름은 무색이라고 말해야 한다. 구름 속을 떠다니는 구름방울은 모두 투명한 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름방울이 햇빛을 흡수하거나 반사하면 다양한 색상을 보인다. 막 태어난 엷은 구름은 빛을 고루 산란하여 흰색이다. 구름층이 점차 두꺼워지면 우리 눈에 들어오는 빛의 양이 적어지면서 회색으로 변한다. 멀리 떠 있는 구름의 가장자리에는 연한 푸른빛마저 감돈다. 지는 해에 비친 구름은 불그스름하게 보이지만, 비가 오는 곳은 간혹 녹색도 보여준다. 구름이 보이는 다양한 빛깔은 햇빛이 연출해낸 색의 마술인 셈이다.

구름방울과 모양이 비슷한 진주의 색깔도 한마디로 답하기 어렵다. 진주는 고유의 색을 가지고 있지만, 햇빛을 받으면 다양한 색조가 은은하게 겹치면서 오묘한 광택을 낸다. 남태평양 조개에서 채취한 흑진주는 바탕이 군청색에 가깝다. 하지만 햇빛을 받으면 녹색이나 보라색도 보여준다. 이렇게 다양한 빛깔을 보이는 건 표피의 독특한 구조 때문이다. 진주는 조개의 분비물이 굳어진 결정체다. 외부에서 이물질이 들어오면 조개는 이를 뱉어내는 대신 체액으로 감싸 몸을 보호한다. 이물질에 체액이 반복적으로 쌓이는 동안, 기왓장을 수없이 포개 놓은 듯한 섬세한 나노 구조가 형성된다. 여기에 햇빛이 비치면 가시광선이 나노의 틈새에서 회절하거나 층 내부에서 반사된 빛이 간섭하여 다양한 색을 내보인다.

아랍 사람들은 신의 눈물이 달빛을 받아 바다에서 진주가 된다고 믿었는데, 구름방울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진주가 자라는 과정과 빼닮았다. 미세한 먼지가 상승 기류에 빨려 올라가면, 대기는 이를 세정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수증기로 그 주변을 에워싼다. 수증기가 응결하여 물이나 얼음이 되어 먼지를 감싸면 구름방울이 된다. 그렇다고 먼지 씨앗이 무조건 구름방울이 되는 건 아니다. 도심 상공 같으면 먼지 입자 100개 중에 하나 정도가 구름방울이 된다. 힘든 경쟁을 뚫고 구름방울이 만들어지더라도, 이것들이 서로 합쳐져 수백배 이상 덩치가 커져야 비로소 빗방울이나 눈송이가 되어 지상으로 낙하하게 된다. 양식 조개에 이물질을 주입하면 수백개 중에 하나 정도 쓸 만한 진주가 나온다고 하는데, 먼지가 빗방울이 되는 것은 이물질이 진주가 되는 것보다 더 희귀한 현상인 셈이다.

구름방울이 한데 모이면 무지개구름이 되기도 한다. 작은 구름방울의 직경은 머리카락 굵기의 100분의 1만큼도 안 된다. 크기가 비슷한 구름방울이 옆으로 정렬하여 엷은 구름층을 형성하면, 조개의 속껍질이나 진주와 유사한 나노 구조가 재현된다. 빛이 구름방울을 스쳐 지나가면 회절하여 파장이 다른 빛깔로 나누어져 흩어진다. 전복 속껍질에서나 볼 수 있었던 무지갯빛을 구름에서 보게 되는 것이다. 구름층이 옅을수록 투과한 빛의 색상이 선명하고, 해가 가려진 곳에서 잘 보인다.

어릴 적에 보았던 자개장롱에는 학이나 소나무 모양을 따라 조개껍질이 박혀 있었다. 옻칠에 첨가한 색소에 따라 자개는 다른 느낌을 풍겼다. 특히 새까만 바탕 위에 수놓인 자개의 무지갯빛이 유난히 밝게 빛났다. 연초부터 시작한 코로나바이러스와의 힘겨운 싸움은 해를 넘기는데도, 어두운 터널은 끝이 보이질 않는다. 내일은 무지개구름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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