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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홍은전 칼럼] 아주 오래된 격리

등록 2021-01-03 15:48수정 2021-01-13 17:20

아무도 시설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모두가 시설에서 죽는 시대에 살고 있다. 격리 첫째 날 잠자리에 누워 이 모든 걸 깨달았을 땐 이미 늦었다. 그곳의 문은 바깥에서 잠겨있기 때문이다. 그 문을 여는 일은 당연하게도 갇히기 전에 해야 한다.

홍은전 ㅣ 작가·인권 동물권 기록활동가

2020년에 읽은 가장 인상적인 글 한편을 소개하면서 2021년을 시작하고 싶다. 인터넷신문 <뉴스풀>에 실린 ‘코호트 격리를 겪으며’라는 글이다.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권혜경씨가 14일간 코호트 격리를 겪으며 변화하는 심경을 기록한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다. “감염병 예방이라는 명목으로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사회로부터 격리당했다. 직원들은 우리는 인권이 없느냐, 이렇게 강제로 하면 그저 따라야 하느냐, 가족들은 어떻게 하느냐며 거부반응을 보였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했다.” 딱 이만큼 읽었을 때 너무 짜릿해서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 어디에서 말해지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이 도입은 그 놀라운 반전을 예고하고 있었다.

격리 첫째 날 잠자리에 누운 혜경씨는 한 거주인이 입소하던 때를 떠올린다. 창살 사이로 목을 끼우고 울부짖던 그의 몸부림은 몇날 며칠 계속되다가 조금씩 잠잠해졌다. 그때는 ‘적응’이라 여겼던 변화가 이제 혜경씨에겐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는 썼다. ‘그것은 적응이 아니라 체념이 아니었을까.’

격리 7일째, 어떤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스르르륵. 거주인들의 방이 모여 있는 생활관의 현관 잠금장치가 잠기는 소리다. 식사를 마친 거주인들이 생활관으로 들어올 때마다 나는 그 소리가 갑자기 커지기라도 한 것인지 그는 의아하다. “저 소리를 이전에는 왜 아무 생각 없이 들었을까.” 문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사람은 거기에 문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들어갈 수는 있지만 나갈 수는 없고, 직원에겐 열리지만 거주인들에겐 열리지 않는 문이었다. 한 거주인이 탈출한 적이 있었다. 직원들이 몇 시간을 헤맨 끝에 그를 찾아 데려왔고 그때 잠금장치가 생겼다. 문이 열리지 않자 그 거주인은 손잡이를 쥐고 흔들다가 주먹으로 두드렸다. 그랬던 그도 지금은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혜경씨는 이제 그 이유를 안다. “그렇게 해도 그 문은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격리 11일째 되는 날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알게 되었다. 여기는 감옥이었다.” 혜경씨는 시설을 반대하는 활동가들이 ‘시설은 감옥’이라며 시위할 때마다 창살을 갖고 오는 걸 보며 ‘저건 좀 심하다, 우리는 이들을 보살펴주고 있는데’ 하고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즈음 직원들은 ‘출소’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쓰고 있었다. 출소할 날이 얼마 남지 않자 직원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나가면 뭐 드시고 싶으세요?” “나는 산에 가고 싶어요.” “강가를 걷고 싶어요.” 작고 사소해서 소중한 줄 몰랐던 것들에 대해 사람들은 이야기했다. 출소를 하루 앞둔 날엔 짐을 싸면서 끊임없이 내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일 오후 6시면 나간다.” “5시20분부터 시간이 가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격리 해제. 혜경씨는 썼다. “나는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코로나19라는 재난이 만들어낸 이 독특한 이중 격리의 공간에 14일간 갇혀 있다 해방된 그의 마음속에 작은 감옥이 생겼다. 그 안엔 집에 가고 싶다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사람, 자식들이 사는 곳 근처에 집을 얻어 살고 싶다는 사람, 직접 만든 비누를 서랍에 고이 넣어두고는 가족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사람, 창살에 머리를 끼우고 울부짖는 사람, 열리지 않는 문을 쥐고 흔드는 사람들이 갇혀있다. 자신이 ‘보호’하고 있다고 믿었으나 실은 ‘억압’하고 있는 존재들이었다. 그는 처음으로 돌아간다. “우리에겐 인권이 없나.” 자연스럽게 이 말은 기약 없이 격리당한 이들의 목소리로 변한다. 혜경씨는 다음엔 자신도 창살을 들고 탈시설을 외칠 거라며 자신 같은 이들이 탈시설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글을 마무리했다.

나에겐 이 이야기가 우리의 미래처럼 들린다. 노인요양시설에 갇히게 될 우리 말이다. 아무도 시설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모두가 시설에서 죽는 시대에 살고 있다. 격리 첫째 날 잠자리에 누워 이 모든 걸 깨달았을 땐 이미 늦었다. 그곳의 문은 바깥에서 잠겨 있기 때문이다. 그 문을 여는 일은 당연하게도 갇히기 전에 해야 한다. 혜경씨처럼 말이다. 2020년의 끝자락에 국회에서 ‘탈시설 지원법’이 발의되었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개별 주택을 제공받고 자율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이 법엔 ‘10년 내에 모든 장애인시설을 폐쇄한다’는 굉장한 내용이 들어 있다. 굉장한 법은 굉장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지만, 이것은 분명 인간이 인간을 감금하고 수용하는 오랜 역사를 끝내는 굉장한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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