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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기분 좋은 느낌을 무시하지 말자 / 이주은

등록 2021-01-08 16:08수정 2021-01-09 02:03

플로렌테인 호프만, 〈러버 덕>, 시드니, 2013. Ⓒwikipedia
플로렌테인 호프만, 〈러버 덕>, 시드니, 2013. Ⓒwikipedia

이주은 l 미술사학자·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심심해서 초보 단계의 인공지능 기능이 달린 전자제품과 대화를 나누곤 하는데, 질문을 잘 던져야 만족스러운 답이 나온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 가령 오늘은 날씨가 어떤지, 35 더하기 29는 얼마인지, 혹은 봉준호 감독의 최근 영화 제목은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하면 인공지능은 똑똑하게 잘 말해준다. 그런데 ‘오늘 어떻게 시간을 보내지?’라든가 ‘올해는 뭘 해야 잘 사는 거야?’ 하고 물으면 엉뚱한 대답을 듣게 된다. 질문을 잘 만드는 것이 답을 잘 찾는 것보다 중요한 시대가 확실한 듯하다.

진공청소기, 복사기, 전자레인지 등 기계는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다. 인공지능도 기계의 일종이다. 그러니 그것이 아무리 알고리즘으로 상대를 분석한다 해도 목적 없는 질문에 답을 못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기계와 달리 사람은 특정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는다. 물론 살면서 자신이 세상에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누구라도 끊임없이 생각해봤을 것이다. 목적 없이 생겨난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함이다. 사람은 기계제품이 아니라 예술작품에 가깝다.

질문을 잘 만드는 것이 곧 공부라고 선생님들이 가르쳐온 덕분에 학생들의 질문은 예전보다 날카로워져 있다. 10년 전만 해도 수업시간에 ‘예술이 무엇인가요?’ 하고 묻는 학생이 꼭 있었다. 요즘 학생들은 ‘예술이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요?’라고 표현한다.

학계나 미술계에서는 이미 반세기 전부터 현대의 문화와 인간사를 설명하는 데 일상생활만큼 중요한 자료는 없다고 강조하는 분위기다. 인간의 가능성을 더 이상 이성이나 자유의지가 아닌, 매일매일 벌어지는 활동과 느낌에서 찾는 것이다.

히라노 게이이치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가을의 마티네>를 봤는데, 마침 기억할 만한 대사가 있었다. 주인공인 기타리스트가 연인에게 맛있는 음식을 요리해주며 “이것이 사람을 웃게 하는 데는 1등이죠”라고 한다. 곧이어 ‘두번째로 사람을 웃게 하는 건 이것’이라며 기타 연주를 들려준다. 기분 좋게 하는 느낌, 그것이 예술이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대표적인 하나가 아닐까.

타인을 미소 짓게 한다는 점에서 예술은 유머와 비교할 수도 있다. 유머는 화술의 일종인데, 어떤 때에는 자신을 방어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상대방을 겨냥하여 공격하기도 한다. 사회를 고발하기도, 풍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세련되고 기교 있게 풀어내기 때문에 결국엔 웃음으로 해소할 수 있는, 그 능력이 바로 유머다.

해럴드 니컬슨(1886~1968)은 <영국인의 유머감각>(1956)이라는 책에서 유머는 전체주의 사회나 혁명이 진행 중인 사회에서는 꽃을 피우기 어렵다고 언술한 바 있다. 도달해야 하는 목적이 단일하고 명백한 사회에서는 유머가 불가하다는 뜻인가 보다. 아마 그런 사회에서는 예술도 먹통이 되지 않을까 싶다.

네덜란드 출신의 예술가 플로렌테인 호프만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거대한 고무오리 <러버 덕>(Rubber Duck)을 호수에 띄웠다. 유아들이 목욕놀이 할 때 가지고 노는 노란 오리를 커다랗게 확대한 조각품이다. 이 작품을 만난 관객들은 이유를 알 수 없는 흐뭇함에 사로잡혔다. 큰 호수가 거대한 목욕통이 되고, 자신은 거인국에 온 소인이 된 듯했다. 물론 몇몇 사람들은 저건 무슨 목적으로 만든 거냐고 의아해한다. 어딘가 기분 좋은 느낌이 있다면 바로 거기에 예술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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