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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조두순 ‘격리’는 성범죄를 막을 수 없다 / 하금철

등록 2021-01-14 17:48수정 2021-01-15 11:43

하금철ㅣ독립연구자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의 출소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일부 유튜버들이 그가 사는 동네까지 찾아가 소란을 피우는가 하면, 조두순을 다시 격리해야 한다는 여론도 들끓고 있다. 최근에는 그가 신청한 기초생활보장급여를 지급해서는 안 된다는 국민청원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이런 여론이 충분한 논의 없이 입법화된다면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조두순은 평소 알코올중독이 있었다는 이유로 심신미약이 인정되어 징역 12년이라는 그 죄에 비해 너무나 가벼운 형량을 받았다. 이는 성범죄 판결의 잘못된 관행으로 지목되면서 이후 감경사유에서 음주를 삭제하는 법률 개정이 이뤄졌다. 그런데 조두순의 출소를 앞두고 법무부는 24시간 감시를 통해 그의 음주를 철저히 단속하겠다고 했다. 유명 범죄심리학자들도 방송에 나와 그가 다시 술에 손을 대는지가 재범 여부를 판가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이는 성폭력의 원인을 약자에게 휘두르는 ‘폭력’이 아니라 알코올중독이라는 ‘비정상성’에 기인한다고 보는 것으로, 사실상 법원 판결의 논리와 다르지 않다.

또한 여러 언론에서는 조두순 출소를 앞두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을 보도하며 시민의 불안감만 고조시켰다. 동료 수감자의 증언만을 바탕으로 그가 1시간에 팔굽혀펴기 1천개를 한다고 보도한 것이 대표적이다. 1952년생으로 만 68살의 노인이 그 정도 체력을 가졌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지만, 이런 자극적인 내용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사실상 이런 보도가 이 사건을 흥밋거리로 소비하려는 유튜버들을 자극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간 미투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주목받은 구호 중 하나가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서사’란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가해자 개인에게만 시선을 집중시키는 모든 시도를 가리킨다. 이를 통해 가해자는 여성과 아동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남성’으로서 비판받는 것이 아니라 음주를 비롯한 평소 행실을 통제하지 못하는 비정상적 ‘괴물’로서 비난받는다. ‘괴물’은 일상에서 ‘낯선’ 존재다. 따라서 이런 시각 속에서는 다수의 성범죄가 가족을 비롯한 ‘친밀한 관계’ 사이에서 발생한다는 가장 기초적인 사실을 놓치게 된다. 그런데 바로 지금 조두순의 재범을 막아야 한다는 미명하에 온갖 추측과 상상이 버무려진 서사가 쏟아지고 있다.

또한, 일부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보호수용법’은 전두환 군부독재의 유산으로서 2005년 폐지된 ‘사회보호법’의 부활이다. 찬성론자들은 재범 위험성이 큰 흉악범죄만을 대상으로 한다지만, 재범 위험성 판단 기준이 너무나 자의적이다. 특히 이미 형법에 누범·상습범에 대한 가중처벌조항이 있고 최근 유기자유형의 상한이 30년으로 높아진 상황에서, 출소 후 이뤄지는 수용조치는 명백한 이중처벌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조두순에게 아까운 세금을 써가며 기초생활보장급여를 줘서는 안 된다는 여론에 행정 당국이 휘둘려서는 안 된다. 사회복지제도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일정한 소득 이하의 국민에게는 국가가 최저생계를 보장한다는 것이며, 지구상의 어떠한 사회복지제도도 국민 개개인의 ‘도덕’을 심사하지 않는다. 한명의 흉악범죄자에 대한 원한 심리로 인해 우리 복지제도의 근간을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성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은 국민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성범죄에 대한 대중적 분노를 특정 개인에게 집중시켜 우리 사회의 성차별적 구조를 대체할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절대로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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