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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차이잉원, 해바라기와 미국으로 ‘하나의 중국’ 흔들다

등록 2021-02-02 14:40수정 2021-02-03 02:39

박민희의 시진핑 시대 열전 _16
차이잉원(가운데) 대만 총통이 지난해 9월22일 펑후섬 군기지를 방문해 시찰하고 있다. 차이 총통은 중국 전투기들의 계속되는 대만방공식별구역 진입 무력시위를 비판했다. 펑후/EPA 연합뉴스
차이잉원(가운데) 대만 총통이 지난해 9월22일 펑후섬 군기지를 방문해 시찰하고 있다. 차이 총통은 중국 전투기들의 계속되는 대만방공식별구역 진입 무력시위를 비판했다. 펑후/EPA 연합뉴스

미국은 당분간 대만 중시 정책을 펼 수밖에 없고 대만의 지정학적 역할과 국제사회 위상은 커질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대중국 정책에 따라 대만의 운명은 심하게 출렁이게 된다. 진보적 지향이 더욱 분명해진 대만 사회에서 중국의 억압적 통치에 대한 반감이 커졌지만, 여전히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고, 중국과 갈등할수록 미국 의존도가 높아지는 ‘3각 딜레마’에 대한 대만 사회의 고민도 깊다.

2014년 3월18일 학생과 시민운동가 300여명이 대만 입법원(의회)을 점거했다. 이들은 마잉주 총통의 국민당 정부가 시민들의 뜻을 제대로 묻지 않고 중국과의 서비스무역협정을 밀실협상으로 강행하려 한다며 철회를 요구했다. 23일 동안 계속된 의회 점거 시위는 여론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해바라기 운동’으로 불리게 된 이 사건은 대만의 정치와 사회, 양안(대만-중국) 관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강하고 부유해진 중국과 어떻게 공존해야 하느냐’는 오랜 고민이 빈부 격차, 청년들의 저임금, 실업 문제 등과 만나 분출했다.

2016년 대만 첫 여성 총통 차이잉원(蔡英文)의 당선은 해바라기 운동의 결실이기도 했다. 할머니는 대만 원주민, 할아버지는 청나라 때 대만으로 이주해온 객가 출신 ‘본성인’(1945년 이전에 중국에서 온 이주민)인 차이잉원은 중국 대륙과는 다른 ‘대만인’ 정체성을 상징한다. 그는 대만국립대학과 미국 코넬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영국 런던정경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대학교수로 일하다, 1980년대 말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협상을 맡으며 공직에 들어섰다. 민진당 출신 첫 총통인 천수이볜이 대선 패배 뒤 부패 혐의로 투옥된 당의 위기 속에서 2008년 민진당 대표를 맡은 차이잉원은 변화를 강조하며 젊은 지지층을 결집해 나갔다.

국민당의 마잉주 총통은 2010년 중국과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맺었고, 그해 대만 경제성장률은 10.6%로 급등했다. 강한 경제적 연대가 ‘하나의 중국’을 만들어갈 듯 보였다. 하지만 대만 기업들이 중국으로 빠져나가며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해졌고, ‘중국인이 아닌 대만인’ 정체성이 강한 신세대는 중국과의 관계 강화에 비판적이었다. 특히 중국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의 억압적 통치가 강화되고, 해바라기 운동과 같은 해에 홍콩에서 일어난 우산혁명이 탄압받는 것을 보면서, 중국의 통치 방식에 반감을 느끼는 대만인과 홍콩인의 정서가 강하게 공명했다. 해바라기 운동과 우산혁명은 대만 여론에 ‘중국과 우리의 길은 다르다’는 선명한 신호를 각인시킨 역사적 분기점이었다.

대만 대선을 두달 앞둔 2015년 11월7일, 시진핑 국가주석과 마잉주 대만 총통이 싱가포르에서 역사적 회담을 했다. 시 주석은 양안 관계는 “뼈가 부러져도 근육으로 연결된, 피는 물보다 진한 한 가족”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대만 대선은 중국과 독자적 길을 강조한 민진당 차이잉원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2015년 11월7일 마잉주(왼쪽) 대만 총통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싱가포르 샹그릴라호텔에서 정상회담을 하면서 취재진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싱가포르/EPA 연합뉴스
2015년 11월7일 마잉주(왼쪽) 대만 총통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싱가포르 샹그릴라호텔에서 정상회담을 하면서 취재진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싱가포르/EPA 연합뉴스

민진당은 1991년 당 강령에 ‘대만 독립’을 명시했지만, 차이잉원 정부의 대중국 정책은 훨씬 미묘하다. 1992년 중국과 국민당 정부가 합의한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합의(92공식)는 인정하지 않지만, 대만 독립을 명시적으로 추진하지 않는다. ‘중화민국’으로서 사실상 독립해 있는 현상을 유지하면서 국제적으로 대만의 위상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사이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은 민진당의 ‘반중 정책’과 맞물리면서 미-중, 양안 관계에 격랑을 일으켰다. 도널드 트럼프는 대선 승리 직후인 2016년 12월2일 차이잉원 총통과 통화했다. 1979년 단교 이후 미국 대통령(당선자)과 대만 총통의 첫 대화였다. 2019년 미 국방부의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는 대만을 관계를 강화해야 할 ‘국가’로 명시했고, 2020년에는 미국 고위 관리들이 잇따라 대만을 방문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거침없는 조처들에, 중국은 미-중이 합의한 ‘하나의 중국’ 원칙 위반이라며 대만해협에서 계속 무력시위를 벌이며 반발했다. 미국은 대만을 활용하는 ‘이이제이’ 전술의 유용함을 잘 알고 있다. 대만은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저지할 ‘제1열도선’(일본-대만-필리핀-보르네오로 이어지는 방어선)의 전략적 요충지이며, 대만 반도체 기업들은 미-중 ‘반도체 전쟁’의 주요 변수다. 무엇보다 시진핑 체제의 ‘중국몽’에서 대만이 차지하는 위치가 대만의 전략적 가치를 더욱 크게 만들었다. 대만 통일을 향한 노력은 시 주석이 강한 지도자의 정통성과 장기집권을 합리화하는 중요한 요소다. 시 주석은 2019년 1월2일 연설에서 “대만은 중국의 핵심 이익과 민족 감정 문제이며, 무력 사용 포기를 약속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무력통일도 가능하다는 이 선언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대만이 독립을 공식 선언하지 않는 한 중국이 무력통일에 나설 가능성이 높지 않지만, 시진핑 지도부로서는 차이잉원 정부가 실질적으로 ‘하나의 중국’에서 멀어지는 움직임에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정통성이 훼손된다.

트럼프 정부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계속 흔들자, 차이잉원 정부는 중국의 힘에 밀려 국제무대에서 고립됐던 대만의 위상을 바꿀 수 있는 절묘한 기회로 판단했다. 차이잉원 정부는 미국의 편을 분명하게 선택했고, 시진핑 체제에 대한 대만 사회의 반감을 활용해 ‘반중’ 정책들을 강화했다. 2019년 반침투법을 제정해 중국의 자금이나 지시를 받고 대만 정치에 개입하는 자는 처벌할 수 있게 했고, 역사 교육 등에서도 중국 관련 내용들을 축소했다.

사회 의제에서 차이잉원 정부는 탈원전, 최저임금 인상, 복지 확대 등 해바라기 운동 세대가 지지하는 진보적인 의제들을 적극 수용했다. 하지만 2018년 노동법 개정 과정에서 노동시간 연장 등 기업 이익을 대변한다는 비판을 받았고, 청년 저임금, 부동산값 급등으로 한때 차이 총통의 지지율이 15%까지 곤두박질쳤다. 반전은 홍콩에서 왔다. 2019년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에 중국이 폭력적으로 대응하자 대만인들은 ‘대만의 미래에 대한 경고’로 인식했고, ‘반중’을 내세운 차이 총통은 2020년 1월 대선에서 역대 최다 득표로 재선되었다. 곧이어 닥친 코로나19 상황에서, 중국처럼 강압적 봉쇄를 하지 않고 투명한 정보 공개와 시민참여형 방역으로 누적 환자 900여명, 사망자 8명으로 전염을 통제한 대만의 성과는 ‘중국 권위주의 모델의 우월성’에 대한 반론으로 주목받는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 취임 직후부터 대만은 미-중 갈등의 ‘주전장’이 되었다. 1월20일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 샤오메이친 주미 대만대표가 미 의회의 공식 초청을 받아 참석했다. 중국은 이에 대해 1월23일에는 전투기 13대를, 다음날은 15대를 대만 방공식별구역에 진입시켜 무력시위에 나섰다. 바이든 행정부는 23일 곧바로 중국을 향해 대만에 대한 압박을 중단하라고 공식적으로 경고했다. 미 국무부는 대변인 성명을 발표해 “미국의 대만에 대한 의지는 바위처럼 단단하다”며 바이든 정부의 대중국·대만 정책과 관련해 3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미-중이 맺은 3개의 코뮈니케, 대만관계법, 그리고 ‘6대 보장’(Six Assurances)이다. 1982년 레이건 행정부가 대만에 약속한 ‘6대 보장’은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 종료 시점을 정하지 않고, 무기 판매는 중국과 협의하지 않으며, 대만의 주권을 보장하는 등의 내용이다. 과거 미국 정부들이 중국을 고려해 거론하지 않던 이 조항을 트럼프 행정부가 끄집어냈다. 바이든 행정부는 공식적으로 ‘6대 보장’을 강조함으로써, 대만을 지렛대로 삼아 대중국 압박을 계속하겠다는 신호를 분명히 했다.

2014년 3월18일 대학생들과 시민운동가들이 중국과의 서비스무역협정 비준에 반대하며 입법원을 점거하면서 해바라기운동이 시작됐다. 타이베이/AP 뉴시스
2014년 3월18일 대학생들과 시민운동가들이 중국과의 서비스무역협정 비준에 반대하며 입법원을 점거하면서 해바라기운동이 시작됐다. 타이베이/AP 뉴시스

올해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은 시진핑 주석도 강경하다. 1월28일 중국 국방부는 “‘대만 독립’은 전쟁을 뜻한다”고 경고했다. 미-중 양국 모두 군사적 충돌로는 나아가지 않는다는 암묵적 선은 그어두고 있지만, 대만을 둘러싼 위태로운 공방전을 계속할 것이다. 미국은 당분간 대만 중시 정책을 펼 수밖에 없고 대만의 지정학적 역할과 국제사회 위상은 커질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대중국 정책에 따라 대만의 운명은 심하게 출렁이게 된다.

진보적 지향이 더욱 분명해진 대만 사회에서 중국의 억압적 통치에 대한 반감이 커졌지만, 여전히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고, 중국과 갈등할수록 미국 의존도가 높아지는 ‘3각 딜레마’에 대한 대만 사회의 고민도 깊다. 왕즈밍(王智明, 앤디 왕) 대만중앙연구원 연구원은 해바라기 운동과 우산혁명을 계기로 “독립을 바라거나 중국을 거부하는 젊은 유권자들이 중국에 우호적인 보수적 유권자들을 압도하게 되었다”며 이런 근본적인 사회 변화가 대만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부정적으로 보면 대만해협에서의 전쟁 가능성이고, 긍정적인 면은 대만 주체성의 진일보한 확립이다. 하지만 낙관적으로 기대한다 해도 모두 미국의 지지에 의존하는 것으로 이 점이 대만을 전쟁의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대만 사회의 반중 정서가 “양안의 경제적 의존 관계를 무시하거나, 미국의 대중국 정책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비판적으로 보면서도 “가장 큰 책임은 중국공산당에 있다”고 했다. “그들은 중국의 굴기가 주변에 위협이 된다는 것을 무시하고 오히려 이를 빌려 일당독재를 공고히 했다. 시진핑의 ‘중국몽’이 이 일련의 지정학 정치의 변화를 추동했고, 미국이란 제국과 (대만의) 반공 사상이 이런 구조를 더욱 강화시켰다.”

미-중 갈등의 치열한 전선 위에서 대만 차이잉원 정부는 위태로운 도박을 선택했다. 중국이 비판적인 목소리와 소수자를 탄압하고, 경제·군사적 힘을 휘두르는 정책을 바꾸지 않는다면, 대만 사회는 이 길을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해바라기 운동 이후 대만 사회의 도도한 변화를, 중국은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박민희 ㅣ 논설위원. 대학과 대학원에서 중국과 중앙아시아 역사를 공부했다. 중국 인민대학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한 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한겨레> 베이징 특파원으로 중국 곳곳을 다니며 취재했다. <중국을 인터뷰하다>(공저)를 썼고, <중국과 이란> 등의 책을 번역했다. ‘혐중’에 반대한다.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공정한 이해와 동행을 희망한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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