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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내 마음속의 황소 / 이주은

등록 2021-02-05 13:43수정 2021-02-06 15:51

장우성, <귀목>, 1935, 비단에 수묵채색, 145×178cm. 국립현대미술관.
장우성, <귀목>, 1935, 비단에 수묵채색, 145×178cm. 국립현대미술관.

이주은 ㅣ 미술사학자·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소를 그린 우리나라의 대표 화가라고 하면 누구라도 이중섭을 떠올릴 것이다. 특히 올해 신축년(辛丑年)은 흰 소의 해라서, 이중섭이 1954년에 그린 흰 황소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림 속의 흰 소는 평안하면서도 엄숙한 표정으로 앞발 하나를 힘차게 내디디려 하는 중이다. 세상일들을 두려움 없이 무덤덤하게 헤치고 나갈 지혜를 얻은 소의 모습처럼 보인다.

이중섭 외에도 우리나라 근대기 화가들은 소를 자주 그렸다. 장욱진의 그림에도 조병덕의 그림에도 소가 있다. 월전 장우성(1912~2005)이 그린 <귀목>을 보면, 소가 화면 한가득 차지하고 있고 그 소와 더불어 집으로 돌아가는 소년이 주인공이다. 소년은 소가 먹을 여물을 망태기에 가득 담아 어깨에 메고 간다.

옛 농촌에서는 부모님이 논밭에서 일하는 동안, 송아지에게 줄 꼴을 모으고 먹이를 주며 돌보는 일은 소년의 담당이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송아지는 소년의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는 소꿉친구로 함께 자라게 된다. 소의 목에는 맑은 소리를 내는 쇠로 된 작은 워낭이 달려 있다. 말이 통하지는 않지만, 오랜 시간을 소와 같이 지내다 보면 워낭소리만 들어도 소가 지금 어떤 기분인지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소년은 언젠가는 소와 이별하는 슬픔을 겪게 된다. 소가 시장에 팔려가는 날, 혹은 소년이 자라 다른 도시로 공부하러 가거나 일자리를 얻어 떠나는 날이다. 소와의 추억이 남아 있는 고향을 몇번이나 뒤돌아보며 소년은 도시로 향한다. 그렇게 이별의 아픔을 겪으며 소년은 성장한다. 성장했다는 것은 소년이 나만의 소를 마음속에 간직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영화 <워낭소리>(2009)에는 농촌에서 평생을 보낸 할아버지와 나이 든 소가 나온다. 소년과 송아지로 만나 젊은 시절을 오롯이 함께한 그들이다. 할아버지는 귀가 어두워졌지만 워낭소리만큼은 멀리서도 어김없이 알아챈다. 마음으로 그 소리를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소도 이제 기력이 없어 굼뜨고 꾸벅꾸벅 졸기 일쑤지만, 할아버지가 부르면 벌떡 일어나 걷는다.

할아버지는 형제처럼 정이 든 소를 도저히 장에 내다 팔 수가 없다. 그의 삶 속에는 거의 언제나 그 소가 자리하고 있었기에, 소와 이별한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의 추억을 모두 버리는 것과 다름없다. 늙은 소는 곧 할아버지의 분신이었다. 소가 죽어 영영 곁을 떠나버린 뒤에도 할아버지의 귀에는 그리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저 멀리 정겨운 워낭소리가 딸랑딸랑하고 울려 퍼진다.

여러 그림 속에서 소년이 소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에서는 불교적인 성장의 개념도 깃들어 있다. <십우도>(十牛圖)라는 선(禪) 수행을 위한 불교 그림에서는 깨달음을 열 단계로 구분하는데, 이 그림들에 소가 등장한다. <십우도>는 한 사람이 삶의 여정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깨쳐가는 과정을 자기만의 소를 찾는 것으로 비유한다. 소년이 거친 소를 만나 야생성을 길들여 마침내 고삐를 꿰고 줄을 매어 집으로 끌고 온다. 이때 소년이 처음 마주한 야생의 황소는 나중에 서로에게 익숙해지면서 흰색으로 변하게 된다. 흰 소는 소년의 마음속에 들어온 소의 모습인 셈이다.

누구든지 내 안에 있는 소를 키우며 살아간다. 특히 흰 소는 나와 함께 정신적으로 원숙해져갈 인생 동반자처럼 내 마음속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설날이 온다. 마음속의 흰 소를 잘 몰고 가는 한해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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