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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어떤 진보의 착각 / 이재성

등록 2021-02-15 16:16수정 2021-02-16 11:43

이재성 ㅣ 문화부장

야생에서 잡혀 와 오르간 연주자의 반주에 맞춰 춤을 추는 원숭이가 있었다. 오르간 연주자는 원숭이에게 화려한 옷을 입히고 목에는 금박 오르골을 달아 주었다. 원숭이가 춤을 추면 사람들이 몰려들어 지갑을 열었다. 의기양양해진 원숭이는 늙은 오르간 연주자를 불쌍히 여겼다. ‘내가 춤을 추면 노인은 원하지 않더라도 연주를 해야 하지. 내가 춤을 추지 않으면 노인은 굶어 죽고 말 거야.’

지난해 12월 넷플릭스가 공개한 실화 영화 <맹크>(2020)에서 언론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찰스 댄스)가 시나리오 작가 허먼 맹키위츠(게리 올드먼)에게 들려준 ‘오르간 연주자의 원숭이’ 우화다. 물론 이 우화는 허스트가 맹크(맹키위츠)를 조롱하려는 의도로 만들어낸 이야기지만, 나는 그가 본의 아니게 현대 사회의 비밀을 누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루쉰의 아큐(阿Q)처럼 ‘정신승리’에 취한 대중은 자신이 주인인 양 착각하지만, 이 세계의 작동 원리를 설계하고 통제하는 건 허스트 본인과 같은 막후의 권력자라고 스스로 선언하는 듯하다. 마리오네트처럼 팔다리 관절을 직접 조종하지 않아도 자본투입(옷과 오르골)과 상징조작(내가 주인이다)으로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조지프 퓰리처와 쌍벽을 이루며 황색 저널리즘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허스트는 당시 미국 사회에서 ‘밤의 대통령’ 같은 존재였다.

이 우화는 또한 우리가 흔하게 범하곤 하는 인식의 오류를 풍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화려한 현상(원숭이)에 취해 본질(연주자)을 놓치거나, 이면의 울퉁불퉁한 메커니즘을 보지 못하고 매끈한 표면에서 미끄러지는 경우들 말이다. 예를 들어 이런 질문은 어떤가. 지금 한국 사회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4~5년마다 바뀌는 정치권력인가, 아니면 허스트처럼 ‘교체되지 않는 권력’인가. 정치권력은 나라의 예산과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결정하는 주요 권력이지만, 지배계급의 동의어는 아니다. 만일 정치권력이 자신들의 보호자가 아니라고 판단하면 ‘교체되지 않는 권력’은 맹렬한 저항세력으로 돌변한다. 개혁을 시도하는 리버럴 정권이 깨지기 쉬운 ‘유리 권력’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메커니즘이 우리 사회의 이면을 구성한다.

“권력에 홀딱 반하지 말라”는 미셸 푸코의 조언을 실천에 옮기기 전에 권력의 종류와 작동 방식에 관한 더 많은 논쟁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윤석열 검찰총장이 알현했다는 한국의 ‘밤의 대통령’(족벌언론 사주)들, 그들과 혼맥·인맥으로 얽히고설킨 재벌들, 전관비리(예우)를 고리로 이들과 결탁한 전·현직 판검사들은 이 나라의 지배권력이 아닌가. 수많은 고위공직자 출신들을 고문으로 거느리고 가진 자들의 편에서 나라를 주무르는, 최근엔 공수처장까지 배출한 김앤장은 어떤가.

오랜 군사독재와, 독재 유전자를 이어받은 권위주의 정권에 익숙한 한국 사회는 정치권력이 권력의 전부인 듯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일부 진보적 지식인과 언론조차 빠져들 정도로 매우 강력한 관성을 지닌 인식의 오류다. 진보세력이 가루가 되도록 갈리면서 방향 없이 무너지는 배경에는 이런 오류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고 나는 판단한다. 현재의 정치권력에 대한 현상적 안티테제만으로는 새로운 진보의 길을 열기 어렵다. 감정을 소비하는 정치는 순간의 주목과 격동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지만 세계의 작동 원리를 재설계하겠다는 진보정치가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원숭이 우화에 자존심이 상한 맹크는 허스트를 풍자하는 시나리오로 멋지게 복수한다. 영화사의 전설이 된 수미쌍관의 반전, ‘로즈버드’로 유명한 영화 <시민 케인>(1941)이다. 맹크 자신이 판을 바꿔 역사의 연주자가 된 셈이다. 영화에 관한 영화이자 정치에 관한 영화인 <맹크>의 배경이 된 1930년대 미국은 대공황을 계기로 공화당과 민주당이 진보와 보수라는 정치적 유니폼을 바꿔 입은 격변의 시대였다. 대공황 이래 최악의 경기 침체가 이어지는 지금이야말로 진보정치가 저 낮은 곳의 시대정신과 만나 후진적 정치의 판을 바꿀 기회가 아닐까. 한국의 진보는 역사의 연주자가 될 수 있을까.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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