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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중국 변혁의 씨앗…황제에 맞서는 ‘언니들’

등록 2021-02-16 14:23수정 2021-02-17 02:38

박민희의 시진핑 시대 열전 _17
<중국중앙텔레비전>(CCTV) 진행자 주쥔의 성추행을 폭로해 중국 미투운동의 상징이 된 저우샤오쉬안(셴쯔)이 지난해 12월2일 첫 공판이 열린 베이징 하이뎬구 인민법원 밖에서 지지자들의 응원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중국중앙텔레비전>(CCTV) 진행자 주쥔의 성추행을 폭로해 중국 미투운동의 상징이 된 저우샤오쉬안(셴쯔)이 지난해 12월2일 첫 공판이 열린 베이징 하이뎬구 인민법원 밖에서 지지자들의 응원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사회주의 여성의 주도적 역할을 추켜올렸던 중국 당국은 이제 미투운동과 페미니즘을 ‘서구 사상에 오염된’ ‘반중국적’ 불온세력으로 여긴다. 2017년 5월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온라인판은 “서구 적대세력들이 서구 페미니즘을 이용해 중국의 전통적 여성관과 국가의 성평등에 대한 기본 정책을 공격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중화전국부녀연합회 부주석의 발언을 보도했다.

2020년 12월2일 중국 베이징 하이뎬구 인민법원, 매서운 추위 속에서 100여명이 하루 종일 법정 앞을 지켰다. “우리는 당신과 함께 역사의 대답을 요구한다”는 글귀를 들고.

시나리오 작가 저우샤오쉬안이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의 유명 진행자인 주쥔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뒤 2년 만에 이날 첫 재판이 열렸다. 주쥔은 중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 방송인이며, 매년 설 전날 7억명 이상이 시청하는 특집 프로그램 ‘춘제완후이’를 19년 연속 진행한 방송계의 권력자다.

저우는 자신이 당한 일을 이렇게 회고한다. 2014년 대학 신문방송학과 학생이던 저우는 베이징의 시시티브이 본사에서 인턴으로 일하면서 과제로 제출할 인터뷰를 하러 주쥔의 분장실로 갔다. 주쥔은 다른 사람들이 나간 뒤 저우의 몸을 강제로 더듬고 키스를 했다. 저우는 이튿날 바로 경찰서에 신고했지만, 공안들은 ‘주쥔의 사회적 역할’을 거론하며 신고를 취하하라고 요구했다. 공무원인 부모의 상황을 생각하라는 압박도 받았다. 몇년 동안 저우는 침묵을 지키면서 가까운 친구에게만 이 사건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2018년 중국 대학들에서 ‘미투운동’이 시작되었다. 교수들의 성희롱과 성폭력에 대한 고발이 이어졌고, 20년 전 베이징대에서 교수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자살한 학생 가오옌의 사연을 알리면서 진상규명과 가해 교수 처벌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운동도 벌어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해 7월 저우는 친구가 성추행당한 사연을 올린 글을 보고 공감과 연대를 표하려고, 몇년 동안 괴로워하면서도 공개하지 못했던 ‘그날’의 일을 밤새도록 썼다. “여성들이 입을 열고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하는 게 중요하다. 우리는 이런 학살이 존재한다는 것을 사회가 알도록 해야 한다”며 그가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시나웨이보에 올리자, 상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전국 곳곳에서 저우의 글을 읽은 젊은 여성들이 숨막히는 가부장 문화에서 자신들이 겪은 일에 대해 수만건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성희롱과 성폭력 경험을 털어놓았고, 권력층 남성들에게 당한 많은 성폭력도 드러냈다.

이때부터 ‘셴쯔’(弦子)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저우는 중국에서 미투운동과 페미니즘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선구자가 되었다. 비난과 혐오, 협박 메시지도 수없이 받았다. 2018년 8월 주쥔은 저우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고 65만위안(약 1억1200만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저우는 물러서지 않고 주쥔을 정식으로 고소하고 소송을 시작하면서 “싸울 준비를 합시다”라는 글을 에스엔에스에 올렸다. 저우는 웨이보의 ‘셴쯔와 친구들’ 계정을 통해 소송 과정의 일을 기록하고, 성폭력·가정폭력을 비롯한 여성들의 현실을 알리고, 다른 피해 여성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긴 기다림 끝에 첫 재판이 시작되기 전날 올린 글에서 저우는 “승리하면 다른 이들에게 용기를 줄 것이고, 지더라도 역사에 질문을 남기는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내 소송이 함께 싸우고 침묵을 깼던 사람들을 모으고 기억되는 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날 법정 밖에는 경찰들이 곳곳에 배치돼 외신 기자들을 쫓아내는 등 긴장감이 감돌았다. 하지만, 비판적 목소리를 용납하지 않는 정치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100여명 이상의 지지자들이 엄동설한 속에서도 쌀토끼 그림을 들고 한밤중까지 자리를 지켰다. 쌀(米)토끼(兎)는 중국어로 ‘미투 운동’을 상징한다.

쌀(미)과 토끼(투)로 중국 미투운동을 상징하는 그림
쌀(미)과 토끼(투)로 중국 미투운동을 상징하는 그림

이날 재판에 대한 기사는 중국 관영언론에서는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하지만 저우를 지지하러 모인 이들이 현장의 상황을 전하며 온라인에 올린 글과 사진, 동영상은 검열에도 불구하고 ‘#셴즈가 주쥔의 성희롱을 고소한 재판이 오늘 시작됐다(#弦子訴朱軍性騷擾案今日開庭)’는 해시태그를 달고 온라인의 뜨거운 뉴스가 되었다. 홍콩 언론 <단전매(端傳媒)>는 이날 네티즌들이 중국 SNS에서 올렸으나 얼마 뒤 검열로 삭제된 글들을 삭제되기 전에 저장해 모아 보도했다. “여성들이 입을 열고 말하게 하라, 당신은 혼자 싸우고 있는 게 아닙니다. 천천만만의 사람들이 당신 뒤에 서 있습니다.” “셴즈의 목소리는 많은 이들이 입을 열고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이제, 이 소송이 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졌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많은 이들에게 입을 열고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것이다.” “셴즈와 나는 동갑이다. 나는 그와 더 많은 그들의 응원 아래 내 경험을 말할 수 있었다. 그는 내가 본 가장 용감하고, 가장 열정적인 사람이다. 결과가 무엇이든 우리에게는 이미 승리다.” “이 파도처럼 전해지는 용기는 이미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을 말하게 했다. 셴즈 힘내, 너는 혼자 싸우는 게 아냐. 수많은 이들이 너의 뒤에 있어.”

저우의 끈질긴 소송은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처럼 보인다. 공산당 자문기구인 정협 위원이기도 한 주쥔은 정부와 공산당 고위층, 기업가들과 막강한 인맥을 가지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당의 이미지를 대변하는 주쥔의 이미지가 성추문으로 망가지는 것을 원치 않으며, 미투운동이 확산될 경우 고위 당국자와 간부 등 특권층의 부패와 성추문이 광범위하게 폭로될 가능성도 경계하는 것으로 보인다. 저우의 소송은 관영언론에 보도되지 않으며, 미투 관련 게시물은 검열로 삭제되곤 한다.

저우는 소송을 시작할 때 “인격적 권리 침해” 조항을 근거로 해야 했다. 당시 중국 법체계엔 성희롱을 처벌하는 조항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전국인민대표대회는 지난해 5월 성희롱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민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처벌 조항이 명확하지 않은 점 등 한계는 있지만 중국 여성들의 노력이 만들어낸 변화다.

‘남녀평등’은 중국공산당이 1921년 창당 시기부터 공식적으로 내건 구호였다. 봉건제의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많은 여성들은 이 구호에 이끌려 혁명에 참여했다. 1949년 공산당의 승리 이후 헌법에는 남녀평등이 명시됐고, ‘여성은 세상의 절반’이라는 마오쩌둥의 구호 아래 중국 여성들은 적어도 공적 영역에서의 평등은 성취한 듯 보였다. 하지만 시장화 개혁 이후 돈의 힘이 커지면서 뿌리 깊은 가부장제와 성차별은 노골적으로 되살아났고, 고용과 임금, 퇴직연령 등의 불평등, 일터에서의 성폭력도 심각해졌다.

2013년 시진핑 국가주석의 집권 이후 정치적 권위주의가 강화되면서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도 더욱 강해졌다고 여성운동가들은 말한다. 시 주석은 집권 초기 아저씨 또는 아버지라는 의미가 담긴 ‘시다다’(習大大)로 불리며 ‘중국의 아버지’ 이미지를 구축했다. 노동인구가 감소하고 급격한 고령화가 진행되자 2015년 말 한자녀 정책이 폐지됐다. 당국은 이제 전통적 가족이 안정적인 사회의 토대라는 관념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여성들의 출산을 장려하고 있다. 2016년 2월17일 시 주석은 “가정을 중시하고 가정교육을 중시하고 가풍을 중시하라”고 연설했다.

젊은 여성들은 보수화되는 국가의 결혼과 출산 요구에 동의하지 않는다. 국가통계국 통계를 보면 연간 출생아 수는 2017년 1723만명, 2018년 1523만명, 2019년 1465만명으로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여성들의 관심은 일상 속에서 평등한 권리를 요구하고, 경제적 능력과 자아실현을 중시하며, 성차별·성폭력 등을 적극적으로 고발하는 쪽으로 향하고 있다.

세계여성의날을 앞둔 2015년 3월6일과 7일에는 버스와 지하철에서 성희롱 예방 스티커를 나눠주는 캠페인을 준비하던 다섯명의 중국 여성이 체포됐다. 리마이쯔, 웨이팅팅, 정추란, 우룽룽, 왕만 등 페미니스트 활동가 5명은 베이징의 공안국 심문실로 압송됐다. 공안은 이들이 ‘국외 불온세력과 연결된 반체제 활동’을 했다고 몰아붙였다. 이들이 갇혀 있는 동안 국내외에서 이들 ‘페미니스트 파이브’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석방운동이 계속되었다. #다섯명을 석방하라(#FreetheFive) 청원에는 전세계 200만명이 서명했고 이런 연대가 37일 만에 이들의 석방을 이끌어냈다.

사회주의 여성의 주도적 역할을 추켜올렸던 중국 당국은 이제 미투운동과 페미니즘을 ‘서구 사상에 오염된’ ‘반중국적’ 불온세력으로 여긴다. 2017년 5월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온라인판은 “서구 적대세력들이 서구 페미니즘을 이용해 중국의 전통적 여성관과 국가의 성평등에 대한 기본 정책을 공격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중화전국부녀연합회 부주석의 발언을 보도했다.

가수 탄웨이웨이(가운데)가 가정폭력과 여성혐오를 고발하는 내용을 담은 노래 &lt;샤오쥐안(가명)&gt;을 부르고 있다. 동영상 갈무리
가수 탄웨이웨이(가운데)가 가정폭력과 여성혐오를 고발하는 내용을 담은 노래 <샤오쥐안(가명)>을 부르고 있다. 동영상 갈무리

젊은 세대의 평등과 권리 의식은 높아졌으나 사회의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한자녀 정책으로 외동딸인 여성들은 20대 중반부터 가족들의 결혼 압박을 강하게 받고, 결혼 후에는 많은 여성들이 가정폭력으로 고통받는다.

지난해 12월 가수 탄웨이웨이(譚維維)가 발표한 노래 ‘샤오쥐안(가명)’은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다. 노래의 가사는 대담하다. “우리 이름은 샤오쥐안이 아니라네, 가명은 우리 최후의 방어선, 신문 사회면을 뒤흔드는 얼굴을 흐리게 처리한 사진…/ 하수도에 흘려 버리고 신혼방에서 강바닥으로 버려지지/ 여행가방에 넣어 버리고, 베란다 냉장고에 얼려두고… 결국 당신들은 어떻게 기록되나/ 요망하고, 간사하고, 행실 나쁘고, 음란하고, 나쁜 년, 마녀, 노예, 멍청이, 바보, 백치, 질투, 시기, 의심 많은 여자/ …내 이름을 지워버리고, 내 이름을 망각하고, 똑같은 비극이 또 벌어지고…”

이 곡은 중국에서 최근 실제로 일어난 가정폭력 사건들을 담고 있다. 지난해 7월 항저우의 한 남성은 아내를 살해하고 주검을 절단해 변기로 흘려 보낸 후에 실종신고를 했다. 9월 티베트 여성 라무가 인터넷 생방송을 하는 도중 전남편이 그의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붙여 살해했다. 2016년 상하이에서 아내를 살해한 남편이 주검을 베란다의 냉장고에 3개월 동안 넣어뒀다가 발각됐다.

탄웨이웨이는 이 노래는 “용기가 아니라 책임감”이라는 글을 에스엔에스에 올렸다. 이 노랫말을 쓴 인웨(尹约)는 지난 1월 <신주간> 인터뷰에서 “이런 고통이 진정으로 널리 알려지고 들리고, 인식되고 받아들여지고, 공개적으로 토론될 때, 이 비극을 끝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페미니스트들은 중국 노동·인권운동의 주역이기도 하다. 2014년 광저우 대학가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에는 많은 여성운동가들이 함께했다. 2018년 베이징대 미투운동의 중심에 섰던 웨신은 그해 여름 산업용 기계 공장 자스커지(제이식)에서 독립 노조를 세우려 했던 노동자들과 연대했다가 체포됐다.

페미니즘은 공산당 통치에 직접 도전하지 않는다. 미투에 나선 여성들은 반체제 인사가 아니다. 다만, 젊은 여성들은 성희롱, 가정폭력, 고용과 입학 등에서의 성차별 등 일상의 부조리에 침묵하지 않고, 때로는 권력의 부조리에도 용감하게 도전한다. 당국이 사회운동 전반에 감시와 통제를 강화했지만, 차별을 인식하고 항의하고 현실을 바꾸려는 여성들의 열망을 모두 지울 수는 없다. 애국주의와 국가주의의 성벽에 균열을 내는 이들의 도전에서 ‘변혁의 씨앗’을 본다.

| 박민희 논설위원

대학과 대학원에서 중국과 중앙아시아 역사를 공부했다. 중국 인민대학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한 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한겨레> 베이징 특파원으로 중국 곳곳을 다니며 취재했다. <중국을 인터뷰하다>(공저)를 썼고, <중국과 이란> 등의 책을 번역했다. ‘혐중’에 반대한다.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공정한 이해와 동행을 희망한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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