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언 도쿄 특파원
편집국에서
황우석 서울대 교수와 호리에 다카후미 전 라이브도어 사장. 비슷한 시기에 몰락한 한국과 일본의 두 ‘영웅’을 지켜보는 마음은 착잡하다. 편법과 조작으로 단기간에 세계가 주목할 만한 성공 신화를 일군 뒤 하루아침에 무너져내린 두 사람의 궤적은 ‘판박이’다. 그런 허상에 들떠 사회 전체가 심한 열병을 앓은 점도 흡사하다.
지식산업 사회의 ‘아이콘’인 두 사람은 최고를 지향했다. 황 교수가 생명공학계의 황제를 꿈꿨다면, 호리에 전 사장은 세계 최대 기업을 갈망했다. 녹록지 않은 현실의 벽 앞에서 ‘초심’을 잃은 두 사람은 끈기있게 실력을 키워가는 멀고 험한 길 대신에 ‘한탕주의’로의 질주를 택했다.
황 교수는 동물복제 분야의 뛰어난 기술 보유자다. 그렇지만 전국민의 환호와 세계의 선망을 받기에는 한참 못 미친다. 명성에 굶주린 그는 세계 최초의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 배양이라는 날조를 거듭하면서 희대의 사기극으로 내달렸다.
호리에는 아이디어와 추진력이 뛰어나지만, 선발 정보기술 업체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조급한 그는 본업에서 승부를 보려 하지 않고 기업사냥으로 눈을 돌렸다. 그룹 ‘속성재배’의 즉효약이다. 그러나 값싼 알짜기업이 널려 있지 않을뿐더러 인수자금이 넘쳐나는 것도 아니다. 어수룩한 일본 금융관련법의 허점을 악용하는 것을 넘어 주가 조작, 분식 결산이라는 대담한 불법행위로 귀결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정보사회에 걸맞은 ‘미디어형 인간’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구린 곳을 감추고 대중의 열광을 몰아가는 데 미디어는 최적의 도구다. 황 교수는 실험실에서 보내야 할 소중한 시간을 언론 접촉과 인맥 관리에 쏟았다. 이는 정부 지원 연구비 ‘싹쓸이’와 각계를 망라한 지지세력 구축으로 이어졌다.
호리에는 걸어다니는 ‘선전탑’이었다. 프로구단·후지텔레비전 인수전은 물론 총선에도 뛰어들어 화제를 끊임없이 양산했다. 방송 오락프로그램과 뉴스쇼, 주간지의 ‘단골손님’이었다. 라이브도어는 호리에의 인기 하나로 회원과 접속건수를 폭발적으로 늘렸다. ‘돈이면 뭐든 가능하다’는 막말을 하면서 300억원짜리 전용기를 사는 등 한껏 치기를 부린 그에 비해, 겸손하며 애국주의로 무장한 황 교수가 더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는 게 차이다.
이들의 폭주를 감시하는 게 본연의 임무인 정부와 언론이 ‘치어리더’를 자처했다가 호된 후폭풍에 시달리는 점도 비슷하다. 특히 호리에를 총선에 투입하면서 고이즈미 개혁의 동반자이며 살붙이라고까지 치켜세웠던 자민당 유력 인사들은 사과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물론 두 사람이 비난만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황 교수는 난치병 환자들의 정신적 지주다. 한국 생명공학 기술의 세계 석권도 환상은 아니라는 국민적 자부심을 고양시켰다. 호리에는 장기불황으로 풀죽은 일본 젊은이들에게 꿈과 용기, 도전정신을 불어넣었다. 낡은 문화에 발목잡힌 일본 경제의 새 활력소였다. 지금도 이들에게 등을 돌리지 않는 열광적 지지자들이 적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붕괴된 ‘영웅 신화’는 땀 흘려 연구하고 일해온 성실한 사람들에게 훨씬 심한 무력감과 허탈감을 안겨주고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대박’을 향해 총진군하도록 몰아치는 경쟁지상주의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그래서 이들의 몰락은 양국 국민에게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돌아보라는 경종으로 들린다. 두 사람이 원점에서 새로 출발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추락한 우상이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서는 것은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는 작은 징표가 될 수 있다. 박중언 도쿄 특파원 parkje@hani.co.kr
그러나 붕괴된 ‘영웅 신화’는 땀 흘려 연구하고 일해온 성실한 사람들에게 훨씬 심한 무력감과 허탈감을 안겨주고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대박’을 향해 총진군하도록 몰아치는 경쟁지상주의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그래서 이들의 몰락은 양국 국민에게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돌아보라는 경종으로 들린다. 두 사람이 원점에서 새로 출발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추락한 우상이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서는 것은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는 작은 징표가 될 수 있다. 박중언 도쿄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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