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논객들의 요지는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가 각각 유례없는 성취를 했음에도 서로 비난만 일삼은 탓에 정치적 내전 상태라는 것이다. 산업화·민주화의 수혜를 모두 받고 자란 80년대생을 중심으로 두 세대의 공과를 평가하고 극복함으로써 추격에서 추월의 시대로 갈 것이란 주장이다. 한마디로 긍정의 정치학, 극복의 세대론인 셈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 4주년이었던 지난 2017년 2월25일 저녁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촉구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얼마 전 페친 소개로 접한 <추월의 시대>란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 80년대생 6명의 공동저작인데 세대와 역사, 정치를 두루 아우른 수작이다. 진영의 틀에서 벗어나 통합적 관점에서 바라본 세대론이었다.
30대 논객들의 요지는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가 각각 유례없는 성취를 했음에도 서로 인정하지 않고 비난만 일삼은 탓에 정치적 내전 상태에 빠졌다는 것이다. 산업화·민주화의 수혜를 모두 받고 자란 80년대생을 중심으로 두 세대의 공과를 평가하고 극복함으로써 추격에서 추월의 시대로 나아갈 것이란 내용이다.
한마디로 긍정의 정치학, 극복의 세대론이라 할 만하다. 2030세대가 민주화의 역사와 본질도 모른 채 보수화하고 있다고 한탄하는 윗세대에 대한 이유있는 반론으로도 읽힌다.
우선 산업화·민주화로 쉼 없이 달려온 지난 60년 세월을 뒷세대의 눈을 통해 조금은 담담히 바라보게 된다. 선진국의 마지노선이라는 1인당 국내총생산 3만달러를 달성한 나라 중 우리처럼 ‘글로벌 넘버원’ 제품이 수두룩한 나라는 많지 않다. 세월호에 이은 촛불혁명은 시민들이 들고일어나 먹고사는 문제와 생명의 문제를 통합했다는 점에서 “한국 민주주의가 일본 민주주의를 추월한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문제의 핵심은 ‘두 세대가 자신들만의 폐쇄적 서사에서 여전히 주인공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산업화 세력에게는 ‘북한과 그 추종자들’, 민주화 세력에게는 ‘독재자와 그 부역자들’이라는 빌런(악당)이 있다.” 결국 “상대편이 퇴장하지 않는 한 퇴장할 수 없고, 내로남불도 이기심 때문이 아니라 빌런이 퇴장하지 않는 한 히어로가 ‘작은 흠결’을 핑계로 하차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이를 “퇴장할 수 없는 히어로의 비극”이라 하고 두 세대를 “역사화해서 집에 잘 보내드릴 것”을 제안한다. 역사화는 성과를 인정하고 상대화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두 세대가 크게 성공한 세대라는 걸 깨닫게 한 뒤 인위적으로 끌어내리는 게 아니라 은퇴 연령에 도달했을 때 집에 잘 보내드리자는 것이다.
산업화·민주화 세대의 성취와 한계, 생존 방식까지 고찰한 날카로운 분석이다. 해법이 현실적인지는 분명치 않다. 두 세대, 특히 민주화 세대는 젊은 세대가 내 편을 들지 않는다고 서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장강의 물을 뒤로 돌린 순 없다. 주어진 역할을 묵묵히 다하고 너무 늦지 않게 비켜서는 것도 방법이다.
어쩌면 이런 세대 극복 움직임은 2016 촛불로부터 발원했는지도 모른다. 촛불을 치켜든 2030세대의 기저에는 단순한 정치세력 간의 정권교체를 넘어 앞선 세대들을 통으로 극복하려는 대분투가 꿈틀대고 있을 수 있다.
‘80세대’ 저자들의 역사인식도 흥미롭다. 대한민국 발전의 동력과 근원은 무엇인지, 미국과 일본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북한은 우리에게 무엇인지 하는 문제는 역사와 세대를 아우르는 논쟁적 질문이다.
미국이나 일제가 산업화의 결정적 동인이라는 주장을 필자들은 대체로 배척한다. 미국 원조를 받은 나라는 여럿이지만 산업화에 성공한 나라는 한국과 대만 정도다. 한국, 대만이 일제 식민지여서 산업화됐다는 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해선, 지난 30년간 중국과 베트남의 성장은 ‘일본 예외주의’가 아니라 ‘동아시아 특성’과 맥이 닿아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조선시대 자립적 소농, 해방 이후 토지개혁, 박정희의 중화학공업 투자, 교육열 등은 우리 특유의 내적 요인에 해당한다.
미국과 일본을 산업화의 근본 원인으로 보는 것과, 주어진 여건 속에서 우리의 분투가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으로 보는 건 매우 다르다. 두 측면을 동시에 볼 수 있다면 해방 이후 역사를 통합적으로 보게 된다. 특히 19세기 말 이미 산업혁명과 의회를 확립한 일본의 성취와 한계를 두루 보는 건 ‘일본을 제대로 보기 시작한 세대’의 등장이라 할 만하다.
북한에 대해선 ‘2국가 평화체제’를 주장하는데, 80세대답게 남한의 틀 내에서 북한을 바라본다는 게 특징이자 한계다.
이들 주장은 크게 보아 제3세력론의 범주에 든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인 세대론의 관점에선 이 논의가 제법 설득력 있지만, 정치세력화의 측면에서 제3세력론은 대체로 무력하다. ‘80세대’, ‘80을 위한 정치’란 개념 역시 아직은 명확하지 않다.
이번 논의는 세력으로서 80세대를 어떻게 정립할지, 어떤 정책과 서사로 윗세대를 극복할지를 본격 설계하기에 앞선 서론 격인 것 같다. 앞으로 더 많은 고민과 토론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백기철ㅣ편집인 kcbae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