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산하ㅣ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비 오는 날이면 우는 청개구리에 대한 설화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다. 뭐든지 반대로 하는 아들과 그 엄마, 이렇게 둘로 이루어진 가족이다. 아빠는 어디에 있는지, 형제자매가 있기나 한지 알 수 없다. 둘뿐이긴 하지만 매우 친밀하고 서로가 서로를 잘 안다. 오죽하면 반대로 할 걸 감안해서 냇가에 묻어달라고 했을까. 개구리 우는 소리 하나를 갖고도 가족의 이야기로 풀어낸 걸 보면 우리에게 가족의 개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해준다.
물론 실제로 개구리는 가족을 이루고 살지 않는다. 산란 후 개구리는 제 갈 길을 떠나고 깨어나는 올챙이는 처음부터 제 앞가림을 책임진다. 개구리 중에서 알 근처에 남아 지키는 종도 있으나 전체의 약 6%에 불과하고, 부화한 자식을 돌보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새끼를 낳고서 가버리는 대신 그들을 양육하는 종만 인간이 생각하는 가족과 약간이라도 비슷한 끈을 유지하며 산다. 물론 그 경우에도 ‘가족’의 양상은 너무나 다양하다. 엄마만 또는 아빠만 남는 종, 둘 다 남는 종, 형제자매가 커서도 함께 사는 종 등. 구성, 크기, 기간도 다 다르지만 한가지는 분명하다. 무슨 조합이더라도, 당사자들은 가깝고 애틋한 관계라는 것 말이다.
인간의 핵가족과 비슷하게 사는 동물도 있다. 가령 필자가 연구한 긴팔원숭이는 성체 암수 각 한마리씩, 그리고 이들에게 딸린 어린 개체 몇마리가 함께 산다. 구성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온종일 함께 다닐 정도로 끈끈한 관계이다. 매일 함께 열매를 먹고 서로 털 고르기를 해준다. 하지만 그 ‘가족’이 반드시 혈연관계는 아니다. 있던 성체를 쫓아내고 그룹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기도 하고, 어떤 긴팔원숭이 종에서는 성체 3마리가 함께 살기도 한다. 우리의 핵가족과 가장 닮은 포유동물에서도 ‘가족’의 다양성은 엄연히 존재한다.
최근 설 연휴에 5인 이상 집합금지 조치를 적용하는 것이 문제가 되자 정부는 뒤늦게 가족의 정의를 내놓았다. 부모, 조부모 등 직계존속과 자녀, 손자녀 등 직계비속으로 구성된 직계가족만이 허용되었다. 즉, 며느리와 사위는 돼도, 부모가 없는 명절 상에 형제자매끼리만 만나는 건 금지되었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의 가족이란 무엇인지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마음대로 결정한 것이다. 유구한 생명의 역사와 문화의 전통을 일축하며, 삶과 꿈과 한솥밥을 나눈 형제자매를 가족으로부터 제외시키는 충격적인 결정이다.
코로나라는 특수 상황이지 않냐고 혹자는 말한다. 집합금지를 시행하기 위해 숫자를 정할 순 있다. 그러나 그 수의 구성조차, 특히 가족이라는 핵심가치를 축복하는 자리마저 국가가 개입할 권리는 없다. 대체 무슨 권리로 형제자매의 중요성을 폄하하는가? 이것은 가족관계를 서류로 증명해서 지원금이라도 얻는 그런 계제도 아니다. 내가 가족이라고 보는 사람이면 그와 혈연관계가 있든 없든 나는 나의 설날 모임에 초대할 권리가 있다.
이미 정부는 그보다 몇주 전, 가족 장례 참가를 위한 자가격리면제서 발급 대상에서 형제자매를 누락시킨 바 있다. 형제자매는 필요할 때마다 쳐내도 되는 너저분한 가지가 아니다. 부모님 못지않게 나를 만든 세상의 일부이다. 이런 결정을 내린 관료들의 형제자매 관계가 얼마나 초라한지 모르겠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성인 64%가 혼인·혈연관계 아니어도 가족이라 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가족의 개념은 다양해지고 또 변화하고 있다. 문제는 국가가 비상사태를 구실로 가족과 같은 본질적인 가치조차 함부로 손대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가장 구시대적인 ‘정상 윤리’의 틀을 들이대면서 말이다. 가족. 그것을 함부로 정의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