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현 ㅣ 정치부장
선거 보도에서 가장 쉬운 비판은 ‘또 그때 그 사람’ ‘또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말이다. 이번 보궐선거에서도 과거 경선 또는 본선 출마 경력이 있는 후보들이 여럿이다. 그런데 사실 모든 선거마다 ‘재수’ ‘삼수’ 도전자는 항상 있기 마련이고, 당선된 사례도 많다. 중요한 것은 그 후보가 지난 선거 이후 얼마나 역량을 갈고닦으며 준비했는지, 얼마나 성장한 모습으로 새롭게 유권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느냐다.
그런 관점으로 볼 때, 개인적으로, 이번 선거에서 가장 아쉬운 후보는 우상호였다. 2000년 16대 총선에 처음 출마한 이래 6차례 총선에서 4번 당선됐고, 원외에 있을 때도 당직을 계속 맡았으니 20여년 동안 정치를 해온 ‘여의도 베테랑’이다. 대변인을 여러 차례 맡았기에 접촉할 기회가 많았던 많은 정치부 기자들은 그의 뛰어난 친화력과 공보·정무 감각을 신뢰했다. 2016년 12월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 때는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로서 여권과 물밑 협상을 벌여 62명의 새누리당 이탈표를 끌어냈다. 국회를 움직인 것은 촛불 시민의 뜨거운 열망 덕분이었으나, 초당적 합의로 헌정사 초유의 대통령 탄핵의 밑돌을 놓은 공로는 우상호에게도 돌아가야 마땅하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1987년 6월 항쟁의 주역이었다는 과거의 경력 그 언저리를 맴돌았다. 민주당의 전통적 계보를 잇는 자부심, 한때 비문재인계로 분류됐던 박영선 후보와의 차별화 전략 역시 이해할 수 있었다. 본선에 앞서 당내 경선을 통과해야 하는 만큼 지지층 결집과 조직 다지기에 전념한 것도 수긍할 만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낮은 인지도를 끌어올리기엔 역부족이었다.
특히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혁신의 롤모델’로 내세운 것은 그가 한국 사회의 변화에 얼마나 둔감한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박 전 시장을 감싸는 발언이 너무 노골적이었기 때문에, 여전히 ‘박원순은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여권 지지층을 의식한 정략적 발언이라고밖엔 해석할 도리가 없었다. 우상호는 박 전 시장 피해자의 반론에 “당혹스럽다”며 “설 명절을 쓸쓸하게 보낸 유족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당혹스럽다’는 반응 자체가 당혹스러웠다.
취재원으로서 만난 우상호는 자신과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고 해서 함부로 편을 가르거나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냉혹한 여의도에서도 사람에 대한 배려를 잃지 않는 포용적인 정치인이었다. 아무리 다급했다고 하더라도 피해자에게 그토록 상처를 입힐 발언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최근 어떤 모임에서 한 30대 후배가 박 전 시장에 대해 ‘온정적’ 태도를 가진 86세대 선배들을 향해 던진 말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선배들이 어떤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본인들도 모르는 집단적인 편향이 있다. 그걸 직시해야 한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심전심 서로 이해하는 관계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우리 모두 그런 관계에 목말라한다. 다만 거기 안주하다 보면 집단적 무의식이 빚어내는 편향을 자각할 수 없게 된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여러 후보가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으나, 그중에서도 우 후보는 86세대의 한계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더욱 안타까웠다”고 했다.
신영복의 부친 신학상은 <사명당실기>(1982년)에서 “사람은 그들의 부모보다 그들의 시대를 닮는다”고 썼다. 인간은 태어나고 살아간 시대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 놓인 존재라는 것이다. 시대는 변하기 마련이다. 심장이 고동쳤던, 빛나던 시절의 집단적 경험 속에 머물러 있다면, 시대가 아니라 세대에 갇혀 있는 셈이다.
나는 ‘86 운동권’이라는 말로 싸잡아 비난하는 것을 싫어한다. 86 운동권의 정서를 긍정해서라기보다는, ‘86 운동권’이라는 말이 ‘현재’를 살아가는 86들의 다양함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대에 갇혀 있지 않은 86들과 소통하고 싶다. 나 역시 세대에 갇혀 있지 않은 97이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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