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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재승 칼럼] LH 사태, 가혹하다고 느낄 만큼 대처해야

등록 2021-03-10 13:45수정 2021-03-11 02:52

청년진보당 당원들이 9일 서울 강남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지역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새도시 땅 투기 의혹을 규탄한 뒤 본관 문에 스티커를 붙였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청년진보당 당원들이 9일 서울 강남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지역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새도시 땅 투기 의혹을 규탄한 뒤 본관 문에 스티커를 붙였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LH 사태’와 관련해, 야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와 변창흠 장관의 사퇴를 요구한다. 정부 여당은 으레 나오는 ‘정치 공세’로 여겨선 안 된다. 이번 사태 수습은 국민들이 무엇에 분노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분노가 얼마나 큰지 정부 여당이 직시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답을 찾을 수 있다.

엘에이치(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가뜩이나 나쁜 부동산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사회악’인 부동산 투기에 ‘신뢰’가 생명인 공공기관이 결합되면서 국민들의 분노지수가 증폭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그동안 수많은 대책을 내놨는데도 집값을 잡지 못한 데 대해서는 그래도 이해되는 측면이 있었다. 나름 의지를 갖고 애를 썼지만, 사상 초유의 저금리와 넘쳐나는 시중 유동성 등 외부 요인의 영향을 극복하지 못했다. 비단 우리만의 상황이 아니다. 전세계적 현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지난 5년 동안 중국, 독일, 미국, 프랑스, 일본 등 우리보다 집값이 더 많이 오른 나라가 상당수 된다.

그러나 엘에이치 땅 투기 의혹은 정책 실패와 차원이 다르다. 주택 공급을 책임진 공공기관 직원들이 내부정보를 이용해 땅 투기를 했다면, 정세균 총리의 말마따나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국가 기강을 무너뜨리는 중대 범죄다. 더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믿을 수 없다고 국민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그동안 국민들이 정부에 주택을 어떻게 안정적으로 공급할 것이냐고 물었다면 지금은 주택을 공정하게 공급하고 있는 게 맞느냐고 묻는다. “3기 신도시만 바라보며 투기와의 전쟁을 믿어왔는데 정말 허탈하다” “한두 푼도 아니고 10여명이 100억을 투자했다는 기사를 보고 눈을 의심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만 바보가 됐다” 등등.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이다.

언론 보도를 통해 전해지는 엘에이치 직원들의 투기 수법은 말문을 막히게 한다. 차명거래, 미등기전매, 묘목 심기, 지분 쪼개기 등 각종 투기 수법이 고구마 줄기처럼 엮여 나오고 있다. 엘에이치 직원이 투기를 한 지역의 주민은 기자에게 “아는 사람들은 이렇게도 하는구나”라고 허탈감을 털어놨다.

투기 억제는 문재인 정부 부동산 대책의 핵심이다. 정부는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이라며 다주택자·단기보유자·갭투자 등에 대한 세금 강화, 대출 규제, 청약 제한 등을 통해 투기 수요를 차단하고 시장을 실수요자 중심으로 재편하려 했다. 그러나 정부가 민간의 투기를 잡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동안 공공기관 직원들이 대놓고 투기를 했다. 등잔 밑이 어두웠다. 이제 정부가 무슨 낯으로 민간의 투기꾼들을 질타할 수 있겠는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엘에이치 땅 투기 의혹은 ‘2·4 주택 공급 대책’이 본격화하는 시점에 터져 나와 정부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든다. 엘에이치 등 공공기관 주도로 주택 공급을 확대해 집값을 안정시키려 한 정부로서는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자칫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는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정부가 비판받는 건 마땅하지만, 공공 주도 공급 대책이 좌초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무주택 서민·중산층에게 돌아간다.

이런 일만은 막아야 한다. 이번 사태에 대해 코로나에 대응하는 것처럼 과하다 싶을 정도로 대처해야 한다. 국민들이 가혹하다고 느낄 정도의 고강도 처방이 나와야 한다. 땅 투기 의혹을 철저히 조사·수사해 일벌백계하는 것은 물론 강력한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 합동조사반이 11일 국토교통부와 엘에이치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를 믿을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억울해도 할 수 없다. 국민들은 엘에이치 직원들 몇몇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엘에이치 직원들의 땅 투기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의심한다. 관련 중앙부처·지자체 공무원, 국회의원, 지방의회 의원 등 공직자 전체로 조사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 조사 지역도 3기 새도시뿐 아니라 엘에이치 등 공공기관이 주도한 전국의 주요 택지지구로 넓혀 사각지대가 없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해도 믿을까 말까다. 국민들이 이 정도면 됐다고 수긍할 때까지 파헤쳐야 한다. 비록 사후약방문이기는 하나, 토지·주택 업무 관련 부처·기관의 직원에 대한 토지거래 제한, 신고·등록제, 부당이익 환수, 이해충돌방지 등 법과 제도도 빈틈없이 정비해야 한다.

야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와 변창흠 국토부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 여당은 으레 나오는 ‘정치 공세’로 여겨선 안 된다. 이번 사태 수습은 국민들이 무엇에 분노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분노가 얼마나 큰지 정부 여당이 직시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답을 찾을 수 있다.

안재승ㅣ논설위원실장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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