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생의 오답노트. 해마다 수능 만점자의 공부법과 함께 그들의 오답노트가 소개되곤 한다. 국내 학원에선 오답노트 경진대회를 열 정도로, 오답노트는 비법이자 보편적인 공부법으로 소개된다. <한겨레> 자료사진
최근에 학부모와 학교 선생님들의 소모임에 온라인으로 참여하다가 ‘오답 노트’의 효율성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학생이 시험에서 틀린 질문들을 모아서 이해가 부족했던 개념들을 복습할 목적으로 만드는 학습서 이야기였다. 나는 그런 단어를 처음 들어보았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검색하면서 작성법에 대한 조언도 읽고 다양한 그림과 기호와 무지갯빛 펜으로 각색해서 정성껏 만들어 놓은 견본들도 보았다. 그러면서 학습법이 다 그렇듯이 이것도 상당한 논란의 대상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몇몇 영국 교육자와 학생들에게 의견을 물어보았더니 그들은 하나같이 “너무 좋은 아이디어”라고 반응했다. 어쩌면 이것도 외국으로 수출되는 ‘한국 문화’가 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교육자로서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배우는 과정에서 실수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실수의 중요성을 세 가지 요소로 나눌 수 있다. 실수를 점검하는 과정의 중요성, 또 극복하는 과정의 중요성, 이 둘은 거의 당연하고, 그 때문에 오답 노트가 발명됐을 것이다. 그런데 실수를 저지르는 과정의 중요성은 간과되기 쉽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경험 많은 한 테니스 감독의 이야기가 자주 생각난다. 그에 의하면 어릴 때 대회 우승을 많이 하는 학생이 뛰어난 성인 선수가 되지 못하는 일이 꽤 많다고 한다. 어린 선수들의 경기일수록 실수를 안 하는 조심스러운 스타일이 승산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환경에서 이기는 전략에 집중하다 보면 자연히 모험적인 플레이가 줄어들고 이기더라도 위축되는 테니스가 몸에 배어버린다는 것이다. 수학 공부에서도 마찬가지다. 깊이 있는 내용을 습득하려면 수차례의 실수와 교정을 통해서 점차 이해 수준을 높이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렇기 때문에 실수가 두려워서 쉽게 들어오는 내용만 잘하려고 하면 학문적 성숙도가 늘어날 가능성이 적다.
이런 습관은 결국 대학교 교육에서 심각하게 논의되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연결되는 듯하다. 미국의 작가 윌리엄 데레저위츠는 유명 대학 교육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점을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찬 인재들을 양성하는 데서 찾는다. 그는 높은 시험 성적, 각종 상의 수여에 몰두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젊은이들이 ‘위험에 대한 격렬한 혐오증’을 가지고 안전한 ‘스펙 쌓기’의 인생으로 몰려간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하버드나 예일 같은 유명 대학일수록 좀비 같은 인재들로 가득하다는 신랄한 비판이다.
나는 그 정도로 극단적인 걱정을 해본 일은 없다. 그렇지만 실패가 무서워서 잠재력을 발휘 못 하는 인재를 지도해본 적은 몇 번 있다. 그들은 물론 다 기막히게 뛰어난 경력의 소유자였고, 그중에는 하버드에서 학위를 받고 미국 대학생들 사이에서 거의 최고의 영예로 간주되는 로즈 장학생의 자격으로 영국에 찾아온 ‘영재’도 있었다.
우리 시대 수학의 가장 유명한 실수 중 하나를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라는 350년 된 문제를 풀어낸 앤드루 와일스 교수가 저질렀다. 그는 6년의 고독한 연구 끝에 정리의 증명을 1993년 3월에 발표했는데 같은 해 8월경에 증명이 잘못됐다는 지적을 받고 나서 고치려는 노력에 착수했다. 포기하고 싶은 감정을 수차례 극복하면서 자신의 논리를 샅샅이 재검한 끝에 결국 1994년 10월 정정된 논문을 학술저널에 제출해서 몇 개월의 검증 절차를 거친 뒤 1995년 5월 학계의 인정을 받은 109쪽 길이의 논문이 게재되었다. 즉 실수가 발견되고 나서 완전히 고쳐질 때까지 약 2년의 고통스러운 노력이 필요했다. ‘수학자는 뛰어날수록 잘못된 증명을 많이 한다’는 농담 섞인 격언이 있다. 이 말은 다른 이들에 의해 실수가 발견되려면 학자의 영향력이 우선 커야 한다는 지적이지만 뛰어난 수학자는 모험적인 사고를 자주 한다는 관찰이기도 하다.
오답 노트는 일부 학생들에게 일종의 창작품으로 간주되는 것도 같다. 때로는 너무나 예쁘고 질서정연하게 만들어졌기에 시간의 투자도 꽤 필요했을 것이고, 그 때문에 효율성에 대한 회의적인 관점이 나오는 것 같다. 그러나 학생에 따라서 수학과 소소한 미학을 함께 즐기게 되는 노트 구성 작업을 비판할 필요는 또 없을 것 같다. 교육에 대한 공공 담론은 너무 쉽게 ‘좋은 방법’과 ‘나쁜 방법’을 분간하는 흑백 논리로 전락하기를 잘한다. 그런데 학교나 시중에서 사용되는 여러 방법 중에 나쁘기만 한 방법도 항상 좋은 방법도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공부하는 학생이나 그들을 돕는 부모는 적당한 수준에서 여러 도구를 상호보완적으로 활용하면서 상황에 맞는 ‘학습 포트폴리오’를 정립해갈 수밖에 없다.
김민형ㅣ워릭대 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