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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백기철 칼럼] 윤석열이 답해야 할 것들

등록 2021-03-15 17:11수정 2021-03-16 02:42

보수 언론이 온갖 논리와 가십으로 그의 정치 참여를 부추기지만 리더십과 비전, 즉 정치 역량이 없다면 헛일이다. 지도자는 밀도있는 토론과 현장 경험을 통해 국정 현안을 꿰뚫는 안목과 경륜을 갖춰야 한다. 머리를 빌려 쓴다거나, 고시 공부 하듯 전문가들과 벼락치기해서 될 일이 아니다.

백기철 ㅣ 편집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2011년 청춘콘서트로 각광받을 때만 해도 그가 정치에 뛰어들어 힘든 세월을 보내리라 상상하기 어려웠다. 당시 후배 기자와 그의 정치 참여를 놓고 논쟁한 적이 있는데, 후배는 “결코 정치하려는 게 아닐 것”이라고 항변했다. 아마 후배 생각이 꼭 틀리진 않았을 것이다. 주변 상황이 맞물려 돌아가면서 결국 정치라는 블랙홀에 빠져든 것이다.

안 대표가 2012년 대선 때 민주당 후보인 문재인 대통령과 단일화 기싸움을 벌일 무렵 “안철수가 선거에서 이길 순 있겠지만 대통령 된 뒤가 더 걱정”이라는 말들을 했다. 그의 짧은 정치 경험을 우려한 것인데, 이후로도 이 꼬리표를 완전히 떼지는 못했다.

10년 전 ‘안철수 현상’과는 여러모로 비교되는 이른바 ‘윤석열 신드롬’이 불어닥칠 모양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사퇴 직후 대선 여론조사에서 선두 자리를 차지한 건 중대한 상황 변화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3월 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사의를 표명하는 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3월 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사의를 표명하는 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 전 총장의 행보를 단순히 정치공학이나 진영 간 승패의 문제로만 볼 일은 아니다. 초점은 그의 등판이 국민 입장에서 더 나은 정치로 이어질지, 나라의 미래에 보탬이 될지다. 윤석열이 정치를 할지 말지, 또는 성공할지 말지보다 국민 요구와 기준에 걸맞은 내용을 갖출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안철수가 진보에 기반한 제3세력이었다면, 윤석열은 보수 유권자의 성원에 힘입은 제3세력이다. 두 사람 모두 현실 정치에 속하지 않은 채 선두권에 진입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하지만 윤석열은 사실상 고도의 정치 영역에 속하는 검찰에 몸담았다는 점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윤석열의 정치 참여도 훨씬 명확해 보인다. 그가 정치에 뛰어들 수밖에 없을 걸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문재인 정권이 4년 됐는데도 야권에 변변한 주자 하나 없는 상황에서 윤석열이 단박에 그 자리를 꿰찼다. 대체 주자가 없다면 원하든 원치 않든 윤석열은 정치판에 불려나올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이 정치에 뛰어드는 건 국가적으로 불행이다. 검찰총장의 정치 직행은 사법과 정치의 경계를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후진적이다. 오늘의 윤석열을 만든 게 상당 부분 집권세력 탓이지만 검찰주의자인 그 자신에게서 비롯된 측면도 크다. 국민을 내세워 무소불위에 가까운 검찰권을 행사하더니 이젠 나라의 대권을 넘보는 꼴이다.

본질적 질문은 윤석열이 과연 준비됐느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민주적 리더십과 정치 역량을 갖췄는지,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소명의식이 있는지 여부다. 정치에 뛰어들어 검찰개혁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시대정신에 해당하는 공정과 정의, 연대와 통합에 대한 비전은 무엇인지, 남북문제와 4강 외교에 대한 비전은 있는지 등에 윤석열은 답해야 한다.

보수 언론이 온갖 논리와 가십으로 그의 정치 참여를 합리화하고 부추기지만 리더십과 비전, 다시 말해 정치 역량이 없다면 헛일이다. 지도자는 밀도있는 토론과 현장 경험 등을 통해 국정 현안을 꿰뚫는 안목과 경륜을 갖춰야 한다. 머리를 빌려 쓴다거나, 고시 공부 하듯 전문가들과 벼락치기해서 될 일이 아니다.

특수 수사 경험으로 나라 돌아가는 걸 대개는 알고 있다고 반박할 순 있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앞선 대통령들도 별것 없지 않냐고도 한다. 그렇지 않다. 문 대통령만 해도 야당 대표와 의원,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냈다. 이명박은 의원·서울시장을 했고, 박근혜는 의원 정도지만 어쨌든 아버지한테 정치를 배웠다. 디제이, 와이에스, 노무현은 말할 필요도 없다. 27년 검사로 지도자에 걸맞은 경륜을 쌓았다고 보기 어렵다.

윤 전 총장에게 공정과 정의, 연대와 통합으로 대변되는 시대정신의 구체성, 다시 말해 ‘단죄를 통한 공정’을 뛰어넘는 정치적 상상력을 가지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의 공정은 조준된 타깃을 온갖 방법으로 거꾸러트리는 검찰주의식 공정 아닌가. ‘죄와 벌’을 통한 공정일 뿐 복지와 연대, 혁신을 통한 공정과는 거리가 멀다.

윤 전 총장이 수직적·폐쇄적·조폭식 리더십이 아니라 개방적·수평적·합리적 리더십을 갖췄는지 따져봐야 한다. 검찰총장 취임 이후 검찰 인사는 철저히 자기 사람 챙기기여서 검찰 내부가 크게 출렁인 적이 있다. 지도자가 그렇게 인사하면 나라가 기우뚱거린다.

윤 전 총장이 정치를 할 거면 이런 질문들에 답해야 한다. 검찰에서 하던 대로 깊숙이 들어앉아 으르고 주고받으면서 언론에 흘리는 식으로 국정이 될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정치를 하려면 최소한 갖출 건 갖춰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본인도 국민도 불행해진다.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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