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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수도권 정부’가 키운 LH 땅 투기 / 석진환

등록 2021-03-17 18:46수정 2021-03-18 02:41

석진환ㅣ이슈 부국장·사회부장

나와 함께 서울에 사는 아내는 지방의 한 혁신도시로 매일 출퇴근한다. 차 타는 시간만 하루 왕복 3시간이다. 어쩌다 차라도 막히면 4시간을 탈 때도 있다. 버스를 놓쳐 차를 몰고 가면, 돌아오는 길은 그야말로 고생길이다. 혁신도시에 집을 구해 주말부부 생활을 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이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했고, 지금도 그렇다.

힘겨운 출퇴근에 적응이란 없다. 매일 녹초가 돼 퇴근하는 아내는 급기야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추진된 혁신도시 자체에 비판적인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왜 그런지는 밤에 그 도시를 둘러보면 알게 된다. 나는 지역 균형발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 정당성을 지지한다. 하지만 그 많은 출퇴근자들이 그 많은 시간과 화석연료를 길에 뿌리는 현실 앞에선, 아내와 어떤 논리 싸움을 벌이더라도 백전백패다.

2년 반 전에 나는 이 칼럼 지면을 통해 “정부가 부동산 문제를 관통하는 핵심인 수도권 집중을 해결하려는 어떤 시도나 노력도 하지 않고 있으며, 균형발전의 큰 그림도 없고 키를 잡고 있는 인물도 없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국가 균형발전은 민주주의 역사이자 민주당의 역사”이고, “노무현 정부보다 더 강력한 국가 균형발전 정책을 펴겠다”고 약속한 사실을 소개하기도 했다.

우려는 그사이 현실이 됐다. 정부 초기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공언했던 수도권 공공기관 122곳 지방 이전은 균형발전의 작은 일부에 불과하지만, 매년 “검토 중”이다. 이를 애타게 기다리는 지방자치단체들은 또 매년 ‘희망 고문’을 견디고 있다. 지난해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꺼내든 행정수도 이전은 체계적인 계획도, 후속 조처도 없는 ‘뜬금포’가 돼버렸다.

그뿐 아니다. 균형발전은커녕 오히려 수도권 집중이 더 심화됐다. 지난해 기준 수도권 인구는 사상 최초로 비수도권 인구를 추월했다. 혁신도시 건설로 전국 153개 공공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잠시 멈추는 듯했던 수도권 인구 유입은 공교롭게도 문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부터 지속해 증가하고 있다.

인구 증가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다. 수도권에 테크노밸리와 3기 새도시 건설뿐 아니라 서울과 기존 수도권 새도시를 가로, 세로, 엑스(X)자로 촘촘히 연결하는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에 천문학적인 예산이 쓰일 예정이다. 그 밖에 지하철 연장, 도시철도, 경전철, 슈퍼-간선급행버스체계(S-BRT) 등 다 늘어놓기도 숨찬 기반시설 건설이 시작됐거나 추진되고 있다. 정부는 예비타당성 조사와 설계 과정에 필요한 기간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3기 새도시 30여만 가구면 어지간한 광역시가 새로 하나 만들어지는 셈인데, 그 주변을 둘러싼 후속 민간개발까지 포함하면 규모는 더 커질 것이다.

어쩌면 현 정부는 지난 4년 동안 겉으론 지역 균형발전을 외치며 실제론 착실히 수도권 중심의 도시국가 체제를 준비한 집권세력으로 기록될지 모른다(개인적으로 이렇게 된 건 현 집권세력의 주축인 86세대 상당수가 노무현 정부 때와 달리 이미 수도권 기반의 기득권으로 자리 잡은 탓이라고 생각한다).

수도권에서 이런 고밀도 개발이 진행 중인데 ‘촉 좋은’ 땅 투기 세력이 수도권 맹지를 찾아내 왕버들을 심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물론 국가가 부여하는 공식적인 ‘촉’을 가진 일부 엘에이치(LH) 직원들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건 다른 문제다. 엘에이치 직원이나 공직자가 내부 정보를 활용했거나 하다못해 농지법을 위반했다면, 수사를 통해 그에 맞는 처벌을 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균형발전을 방치하고 ‘수도권 정부·수도권 정당’에 머물렀던 집권세력은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뼈아프게 생각해야 한다.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만약 현 정부가 행정수도와 혁신도시를 구상하고 구체화했던 노무현 정부만큼이라도 균형발전에 성과를 냈더라면 어땠을까. 성과를 내지 못했더라도 ‘씨뿌리기’라도 했으면 어땠을까. ‘수도권 집중’이라는 핵심을 외면한 채 “부동산 적폐 청산”을 강조하는 장면들이 그처럼 허무하고 민망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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