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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6.8%의 사람들과 제주 제2공항 문제 / 강영진

등록 2021-03-21 15:37수정 2021-03-22 02:42

강영진 ㅣ 한국갈등해결연구원장·전 제주제2공항타당성검토위원장

우리 시민들의 민주적 소양에 대한 흥미있는 지표가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 때 만들어졌다. 2박3일 숙의 과정을 마친 시민참여단에 마지막 조사에서 물었다. 최종 결과가 본인 의견과 다르면 어떻게 할 것인가? “존중하겠다”는 응답이 93.2%에 달했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열린 자세,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는 지표다. 당시 공론화 과정을 이끌었던 김지형 전 대법관은 그런 시민들을 ‘471인의 현자들’이라 부르며 경의를 표했다.

문제는 나머지 6.8%의 사람들이다. 최종 결과가 본인 의견과 다르면 “존중할 수 없다”고 답한 이들. 공동체의 결정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거부하고 여전히 자기 입장만 고수하려는 사람들. 그런 이가 한 개인이 아니라 조직의 리더나 기관장일 땐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실제 지금 제주도가 바로 그 문제로 난리다.

국토교통부가 성산 일출봉 근처에 제주 제2공항 건설 계획을 발표한 것이 2015년 11월. 그 뒤 5년 넘게 계속돼온 갈등을 매듭짓기 위해 지난 2월 여론조사가 실시됐다. 중요한 국책사업을 어떻게 여론조사로 결정하느냐고 하는데, 그냥 단순한 여론조사가 아니었다.

첫째, 갈등 해결을 위해 추진 쪽인 국토부와 제주도, 도의회, 반대단체 등 책임있는 기관·단체 간 오랜 논의와 합의에 따른 조사였다. 2019년 2월 당정협의에서 제2공항 문제 해결의 대원칙이 합의됐다. “국토교통부는 향후 제주특별자치도가 합리적, 객관적 절차에 의해 도민 의견을 수렴하여 제출할 경우 이를 정책 결정에 충실히 반영, 존중한다”는 것이다. 여러 사정상 주민투표가 힘든 상황에서 사실상 그에 준하는 효력을 갖도록 한 조사였다.

둘째, 이번 조사는 일회성이 아니라, 5년여간 전 도민이 참여하는 공론화 과정을 거친 최종조사 성격이었다. 이는 우리 역사상 두번째로 장기간, 많은 인원이 참여한 공론화 과정이기도 했다. 이 분야 불멸의 1위 기록을 세운 이는 세종대왕이다. 장장 18년 동안 17만명의 여론조사를 포함한 폭넓은 공론화 과정을 통해 조세개혁을 추진해 조선왕조 600년의 기틀을 다진 바 있다.

그 과정에서 도민 의견에 큰 변화가 있었다. 제2공항 계획 발표 직후인 2015년 말 조사에선 도민 중 찬성이 많았고, 성산지역에선 반대가 더 많았다. 지난 2월 제주도·도의회 합의로 실시된 최종조사에서는 완전히 역전됐다. 두 조사기관이 각기 도민 2000명씩 조사한 결과, 둘 다 “반대”가 찬성보다 높게 나왔다. ‘과잉관광’ ‘환경수용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제주도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도민들의 생각이 달라진 것이다.

이러한 도민 의견 수렴 결과를 국토부에 제출해 정책 결정에 그대로 반영하도록 해야 하는데, 원희룡 지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반대가 많았던 전체 도민 조사 결과는 무시하고 찬성이 높게 나온 성산지역 별도조사 결과만 앞세워 제2공항 사업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기존의 합의를 정면으로 어기고, 결과 승복을 거부하는 일이다. 이 때문에 제주사회는 갈등 해결의 길이 아니라 갈등 악화의 길로 되돌아가게 됐다.

정세균 총리는 지난 19일 제주도를 방문해 “국토부가 제주도의 의견도 참고하고 도민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도민 의견에 중점을 둔다는 점에서 일단 방향은 잘 잡은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11월 ‘국민과의 대화’에서 “정부는 도민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다짐한 바 있다. 이달 23일부터 시행되는 행정기본법 제12조는 “행정청은 행정에 대한 국민의 정당하고 합리적인 신뢰를 보호하여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이 법은 적법한 처분도 철회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주고 있다.

제주도민들은 오랜 고민과 토론과 분투 끝에 뚜렷한 민의를 드러냈다. 많은 도민들 그리고 제주도를 진정 아끼는 국민들에게 박수와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결정을 기대한다.

제주제2공항백지화전국행동, 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 한국환경회의 회원들이 2020년 5월 21일 오전 서울 청계광장에서 `세계 생물다양성의날'을 맞아 기자회견을 열어 제주의 생물종을 지키기 위해 제주제2공항 사업 철회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제주제2공항백지화전국행동, 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 한국환경회의 회원들이 2020년 5월 21일 오전 서울 청계광장에서 `세계 생물다양성의날'을 맞아 기자회견을 열어 제주의 생물종을 지키기 위해 제주제2공항 사업 철회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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