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조해진
전경린의 단편소설 ‘맥도날드 멜랑콜리아’(<천사는 여기 머문다>)의 주인공 나정은 일주일에 두어 번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허기를 느끼며 맥도날드에 가서 허겁지겁 햄버거를 먹는다. 그런데 그녀의 허기는 개인적인 삶뿐 아니라 전쟁이나 테러 같은 외부의 뉴스에서도 비롯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요사이 나는 2013년에 발표된 이 소설을 자주 떠올렸다. 소설 속 나정이 8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2021년으로 온다면 여전히 허기를 자극하는 뉴스, 특히 아시아 국가들에서 타전되는 뉴스에 맥도날드로 달려가지 않을까, 상상하면서. 타이(태국)와 미얀마의 민주화 시위와 내전을 방불케 하는 군부의 유혈 진압, 악명 높은 보안법이 통과된데다 불법 집회를 조직하고 선동했다는 죄목으로 젊은 저항의 상징이었던 조슈아 웡마저 수감된 홍콩…. 나는 나정의 허기에 내 마음을 겹쳐놓으면서도 그런 뉴스나 기사를 회피하곤 했는데, 첫째 그 모든 비극에 내가 관여할 수 있는 게 없어서이고, 둘째 내게 닥친 문제들만으로도 벅차서였다. 나는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무관할뿐더러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해 늘 우왕좌왕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공허하지만 편리한 보호막이 되어주었다.
무기력한 마음으로 국경 밖에서 일어나는 소식들을 접하다가, 지난주 어느 저녁에는 거의 반년 만에 친구들을 만나 극장에 갔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간 한 가족의 고군분투를 다룬 정이삭 감독의 화제작 <미나리>를 보기 위해서였다. 영화를 보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미얀마나 태국, 혹은 홍콩에서 한국으로 망명한 이민자가 지금 나와 같은 버스에 탔다면 그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차창 밖 흘러가는 서울의 야경을 보고 있을지 상상해봤다. 걱정과 불안 말고도 어떤 원망 때문에 얼굴이 어둡게 그늘지진 않을까.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개입하려 하지 않는 이 나라에, 그러니까 자신의 고국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피 흘리며 싸우고 있는 일들이 동시대 사건이 아니라 먼 과거의 일이거나 영화 속 이야기처럼 여기고 마는 거대한 무심함에….
<맥도날드 멜랑콜리아>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하나의 맥도날드에 앉아 있는 것은 세상 모든 맥도날드에 앉아 있는 것과 같다.” 캘리포니아와 암스테르담, 상하이와 서울의 맥도날드는 그 내부의 인테리어나 직원의 유니폼이 크게 다르지 않고 통일된 조리법과 조리도구로 공유하고 있기에 음식의 맛 또한 거의 똑같다. 맥도날드가 어디에 있든 그 안에서 우리는 똑같은 테이블과 의자에 앉아 똑같은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먹게 되는 셈이다. 어느 도시에나 있는 규격화된 상자 같은 맥도날드를 떠올리면 세상 사람들은 국적과 상관없이 가깝게 연결되어 있으며 유사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하긴, 우리나라 역시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목숨으로 긴 독재를 청산한 역사를 갖고 있다.
얼마 전 조슈아 웡은 감옥에서 국가 전복 혐의로 또다시 체포되었다. 그는 체포된 와중에도 미얀마의 민주화 시위를 지지한다는 의미로 카메라를 향해 엄지와 새끼손가락만 접어 보이는 일명 ‘세 손가락 경례’를 보여주었다. 그의 용기 덕분에 그 사진을 본 미얀마 사람들은 한순간이나마 웃었을지 모르겠다. 한국의 1980년 광주와 촛불집회를 의미 있게 평가한 바 있는 조슈아 웡은 작년 한국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중국의 홍콩 탄압에 침묵을 선택한 한국 정부에 실망을 드러낸 적 있다. 유튜브에서 그 인터뷰 영상을 찾아 다시 보면서 적어도 사람이 죽지 않도록 전세계 국가들과 유엔(UN)이 적절한 제재를 해주기를, 그리고 우리 모두 조금씩만 더 국경 밖 일들에 관심을 갖게 되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