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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공수처 문턱의 의미 / 김원규

등록 2021-03-22 16:57수정 2021-03-23 02:43

김원규 ㅣ 국가인권위 조사관

나는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2006년부터 국가인권위원회에 근무하던 중 공수처 검사 지원을 관심에 두고 있었다. 개정 전 공수처법은 수사처 검사의 자격 요건으로 “변호사 자격을 10년 이상 보유한 자로서 재판, 수사 또는 수사처 규칙으로 정하는 조사업무의 실무를 5년 이상 수행한 경력이 있는 사람”일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맞는 사람이 현실적으로 소수이고, 공수처 설립 목적이 과도한 검찰권력을 견제하고 인권친화적 수사의 모범을 만들겠다는 것이어서 인권위 경력자인 나로서는 지원에 대한 의무감도 느끼고 있었다.

올 1월 드디어 공수처 검사임용 공고가 떴다. 필요한 서류를 확인하고 자기소개서를 고민하던 중 임용자격 내용으로 “공수처법 제13조(결격사유 등)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문구가 눈에 뜨였다. 13조 제1항 제3호는 검사 등의 결격사유 중 하나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사람”을 규정하고 있다. 바로 위 제2호가 일반적인 공무원 결격사유를 규정하고 있는데도 이 규정을 추가해둔 이유가 궁금하여 전화로 담당자에게 규정의 의미를 물었다. 담당자는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장시간이 지나 형 선고의 효력이 실효되어도 지원자격이 없다”는 의미라고 대답하였다. 나는 이 조항에 걸려 공수처에 지원도 못 하였다.

대신 20대 시절 경기도에 있는 직원 130여명 규모의 프레스 공장에서 생산직 노동자이자 노동조합 사무장으로 일한 시절을 떠올렸다. 1989년 회사와의 임금·단체협약 협상이 결렬되어 노조가 결국 파업을 하였다.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노조 집행부 4명이 구속되고 나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1년형을 확정받았다. 죄명은 관리자들과 실랑이를 하는 과정에서 조합원들과 함께 폭행을 했다는 이유로 특수폭행이었다. 나는 당시 재판에서 상대방에게 손도 댄 적이 없다고 항변했으나, 나중에 조합원 중 누군가 상대방에게 손만 대도 이름도 생소한 공모공동정범 이론에 따라 나도 처벌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국가공무원법 제33조(결격사유)도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없는 결격사유 중 하나로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된 후 5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를 규정하고 있다. 나는 인권위에 들어올 때 이 기준에 의해 문제가 없다고 판정을 받아 공무원이 될 수 있었다. 형의 실효 등에 관한 법률도 3년을 초과하는 징역형을 받은 중범죄인에 대해서도 10년이 지나면 형 선고의 효력을 실효시켜주어 비슷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사람이 법을 위반하여 형을 받더라도 법을 잘 지킨 기간이 상당히 경과하면 반사회성이 희석되므로 사회복귀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인권보호에 부합하고 사회를 위해서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수처법은 누구든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기만 하면 많은 시간이 흘러 형 선고가 실효되더라도 검사가 될 자격 자체를 박탈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법원조직법과 검찰청법도 판검사의 결격사유로 동일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반공무원과 달리 판검사 채용에서는 실형 전과자를 전혀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이들이 법시행자들이니까 평생에 한번이라도 실형을 선고받을 정도의 중한 법배반적 태도를 취한 사람은 배제하는 것이 정당한 것일까? 그건 법시행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확보를 위해서일까?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단순하진 않다. 무엇보다 우리는 한때 합법의 이름으로 부정의가 자행되는 시대를 살았다. 가까이 1991년 지극히 합법적으로 무고한 대학생이 유서 대필을 해준 자살방조범이 되었고, 2007년 대통령선거 직전 더할 나위 없이 합법적으로 비비케이(BBK)가 유력 대선후보와 무관하다는 확인을 받기도 했었다.

합법성을 정의와 등치시킬 수 없다면 법시행자에 대한 법충실성 요구 수준은 현행 국가공무원법 수준이 적절해 보인다. 개인적이며 새삼스러운 문제제기 아니냐고 할 수 있다. 검찰이라는 우리 사회의 거대한 기득권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수처이기에 더 깊은 고민이 요구된다. 그리고 그 고민은 이제라도 지속되어야 한다. 국가가 법시행자를 선발할 때 더 중요하게 보아야 할 내용은 실무역량과 함께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용기다. 지원의 문턱을 높이기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이 지원할 수 있게 하고 헌법과 해당 국가기관이 원하는 적절한 인물인지를 충실히 심사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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