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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재승 칼럼] 국민의힘, 백신의짐

등록 2021-03-29 18:29수정 2021-03-30 02:41

대통령 접종 정쟁화, 근거 없는 백신 속도조절론, 끊임없는 아스트라제네카 불신 조장 등등. 국민의힘의 백신 접종 흔들기가 도를 넘었다. 입만 열면 코로나 극복을 위해 야당도 발 벗고 나서겠다고 얘기하는데, 실제 행동을 보면 백신 접종 실패를 바라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 명색이 제1야당인데 코로나 극복에 힘이 되어야지 짐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안재승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공동취재사진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공동취재사진

<한겨레>는 지난달 22일 사설 ‘백해무익한 ‘대통령 1호 접종’ 공방 당장 멈춰야’에서 “국민의힘이 백신 접종에 대한 불신을 없애려면 문재인 대통령이 먼저 맞으라고 주장하는데, 만약 대통령이 먼저 접종을 하면 ‘특혜’라고 공격할 게 불을 보듯 훤하다”고 지적했다. 사설은 백신 불신이 큰 일부 국가에선 대통령이나 방역 담당 장관이 1호 접종을 했으나, 1차 접종 대상자의 94%가 접종에 동의한 국내에선 질병관리청이 정한 순서에 따라 접종을 하는 게 마땅하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이 ‘특혜 시비’를 걸 것이라고 단언한 것은, 지난 1년 동안 줄기차게 ‘코로나 정치’를 해온 국민의힘의 행태를 보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문 대통령이 6월 영국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지난 23일 백신을 접종하자 국민의힘은 ‘특혜’라고 주장했다. 최형두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대통령은 ‘백신 패스포트’ 국민은 ‘백신 패스’? 국민 우습게 아는 정부, 국민 속이는 여당’이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대통령은 G7 회의에 참석한다며 ‘패스포트 백신’을 맞는데, 국민은 맞고 싶어도 ‘백신 보릿고개’에 허덕이고 있다”고 했다. 누가 국민을 속인 건지 국민의힘이 더 잘 알 것이다.

앞서 주호영 원내대표는 23일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최근 들어 하루 접종 인원이 2만명 이하로 떨어졌다. 제대로 접종하면 백신이 떨어져 4·7 선거 때까지 공백기가 생겨 그걸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않기 위해 능력이 있음에도 접종을 천천히 하고 있는 상황 같다”고 말했다. 정부가 재보궐선거를 의식해 ‘접종 속도조절’을 하고 있다는 의혹 제기인데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지난해 4·15 총선 직전 나온 ‘코로나 확진자 축소론’의 재판인 셈이다. 당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총선을 하루 앞두고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총선이 다가오자 코로나 확진자 수를 줄이기 위해 검사 요건을 대폭 강화했다”고 주장했다. 가짜뉴스로 드러났지만 사과 한마디 없었다.

국민의힘은 우리 정부가 가장 많이 확보한 아스트라제네카에 대한 불안감을 끊임없이 부추겼다. 감염병 전문가 대다수가 “아스트라제네카 안전성 논란이 과도하게 부풀려졌으며 백신 접종 뒤 이상반응 문제는 최대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거듭 당부했지만 들은 척도 안 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지난 8일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아스트라제네카 접종은 부작용이 크고 20~30대 젊은이에게서도 부작용이 심각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일 “아스트라제네카라는 유럽에서는 매우 기피하는 백신 종류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접종되고 있다”고 했다. 이 논란은 유럽의약품청(EMA)과 세계보건기구(WHO)가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이라고 결론 내리면서 일단락됐지만, 아스트라제네카는 이미 상처투성이가 됐다. 지난달 25일 발표된 65살 미만 요양병원·시설 입소자 등의 접종 동의율이 94%였는데 지난 22일 발표된 65살 이상은 77%로 뚝 떨어졌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국내에서 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난달 26일 페이스북에서 백신 접종의 2가지 리스크로 “정치권의 악이용과 언론의 선정적 보도가 순탄한 접종에 큰 방해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 고민이 노파심으로 끝났으면 좋겠다”고 걱정했는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극우 유튜버들이 문재인 대통령이 백신 접종을 하면서 주사기를 바꿔치기 했다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보건소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고 있다. 사진공동취재
극우 유튜버들이 문재인 대통령이 백신 접종을 하면서 주사기를 바꿔치기 했다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보건소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고 있다. 사진공동취재

국민의힘이 백신 불신을 조장하는 주장을 하고 일부 언론이 그대로 받아쓰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극우 유튜버들은 가짜뉴스를 쏟아내고 있다. 문 대통령이 백신 접종을 하면서 주사기를 바꿔치기했다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하면서 접종에 눈코 뜰 새 없는 의료진에게 전화로 욕설을 하고 보건소를 폭파시키겠다고 협박했다. 책임 있는 정당과 언론이라면 유튜버들을 질타하고 중단을 촉구해야 한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가짜뉴스 단속 방침을 “대통령 심기보좌”라고 비아냥거렸고, <조선일보>는 질병관리청이 준비를 철저히 하지 못한 탓에 오해를 불렀다고 엉뚱한 소리를 했다.

정부의 백신 접종 계획에 문제가 있으면 야당이 비판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분명한 근거도 없이 아니면 말고 식 주장으로 국민을 오도해선 안 된다.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국민의힘은 입만 열면 코로나 극복을 위해 야당도 발 벗고 나서 도울 것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실제 행동을 보면 정부 대책이 실패하기를 바라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

백신 접종은 코로나 극복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능한 한 빨리 많은 국민이 맞아야 집단면역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최근 세계적으로 신규 확진자가 다시 증가하는 추세인데, 백신 접종이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미국과 영국 등은 감염 확산세가 확실히 잡혔다. 지난 1월 초까지 25만명을 넘나들던 미국은 6만명 수준으로 줄었고, 영국도 같은 기간 6만명에서 5천명까지 감소했다고 한다.

우리도 백신 접종이 차질없이 이뤄져야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벼랑 끝에 몰린 자영업자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아이들도 마음 놓고 학교를 다니고 가족이 함께 여행을 떠나는 날을 앞당길 수 있다. 국민의힘은 국민 생명과 직결된 백신 접종을 두고 눈앞의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해선 안 된다. 일상 회복을 간절히 바라는 국민들의 심정을 헤아려야 한다. 명색이 제1야당인데 코로나 극복에 힘이 되어야지 짐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논설위원실장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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