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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국제사회의 분노’는 없었다 / 전정윤

등록 2021-03-31 16:53수정 2021-04-01 09:44

30일(현지시각) 미얀마 양곤의 거리에서 군부 반대 시위에 참여한 한 청년이 서 있다. 양곤/AFP 연합뉴스
30일(현지시각) 미얀마 양곤의 거리에서 군부 반대 시위에 참여한 한 청년이 서 있다. 양곤/AFP 연합뉴스

“미얀마 국민들은 쉽사리 분노를 표출하지 않고 있어요. 군이 이를 노린다고 보기 때문이죠.”

군부 쿠데타 이틀 뒤인 2월3일 미얀마 양곤 세종학당의 천기홍(47) 교수(부산외대 미얀마어과 특임교수)가 <한겨레>에 현지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떨쳐 일어나지 않는 미얀마 시민들에게 실망은커녕 안도했습니다. 사흘 뒤인 2월6일 시민들의 분노가 거리시위로 처음 분출됐을 때, 오히려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미얀마 민주화를 지지하지만, 반쿠데타 시위가 내전이 될 때의 참상을 늘 접하는 처지라 걱정이 앞섰습니다.

위키피디아 ‘진행 중인 내전’ 목록을 보면 새삼 놀라실 겁니다. 25개나 되는 내전국 이름을 훑어 내려가다 시리아와 예멘을 발견하면 저절로 절망이 밀려옵니다. 10여년 전 시작된 ‘아랍의 봄’은 지금도 매일 최악을 고쳐 쓰는 현재진행형 사건입니다. 기껏 32년 독재자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을 쫓아낸 예멘도, 당시 기준 10년 철권통치자 바샤르 아사드 정권을 쫓아내기 직전까지 맞섰던 시리아도 내전에 강산이 초토화됐습니다. 예멘과 시리아의 사망자는 각각 10만여명과 40여만명(2019년 추산 38만명)이고, 난민은 각각 360여만명과 수천만명(2016년 추산 1350만명)입니다.

드문드문 외신에라도 등장하는 두 나라는 국제사회의 시야에 있다는 점에서 차라리 희망이 있을지 모릅니다. ‘소말리아가 있었지…수단도 있었구나…모잠비크도 심각했었지….’ 매일 수많은 외신을 들여다봐도 좀체 소식을 접할 수 없는 ‘진행 중인 내전 국가’의 목록을 보면 국제사회의 냉혹한 이치에 몸서리를 치게 됩니다. 내전의 ‘평화적 종결’이란 없고, 기껏해야 ‘일방의 승리’이거나, 최악의 경우 ‘끝없는 전쟁’이 있을 뿐입니다.

사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내전을 뜻하는, 진행 중인 내전국 목록의 첫 줄에는 늘 미얀마가 있었습니다. 1948년 영국에서 독립한 직후부터 계속되고 있는 버마족과 소수인종 간 무장투쟁 때문입니다. 2월1일 군부 쿠데타 이전 이미 최장기 내전국인 나라에 ‘또’ 이중으로 내전이 겹친 셈인데, 73년간 내전을 방치한 국제사회의 대응이 이번이라고 다를지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총탄에 쓰러지는 미얀마 어린이들…“소름 끼친다” 국제사회 분노’ 미얀마 ‘국군의 날’이었던 3월27일, 114명이 군부 총탄에 스러진 ‘그날’을 다룬 한 기사가 내내 마음에 걸립니다. 눈에 고무총알이 박힌 한살배기의 사진, 집에서 총에 맞아 숨진 14살 딸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절규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 참상을 목도한 ‘국제사회의 분노’를 전한 부분을 읽다가 되레 분노가 차올랐습니다.

“어린이들을 포함한 비무장 민간인들을 살해하는 것은 소름 끼친다.”(토머스 바이다 미얀마 주재 미국대사) “우리는 버마(미얀마) 보안군이 자행한 유혈사태에 충격받았다.”(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군부 쿠데타로 하루 114명이 죽고, 집에 있던 아이들이 총에 맞아 죽었는데…소름 끼치고, 충격받은 게 전부였습니다. 이튿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절대적으로 너무나 충격적”이라고 밝혔고, 다시 이튿날 2013년 체결한 미얀마와의 교역협정 이행 중단을 발표했습니다. 미국과의 교역 비중이 크지 않은 미얀마의 군부가 크게 요동하지 않을 제재라는 걸 미국이 가장 잘 알 겁니다.

중국은 아예 미얀마 쿠데타가 ‘내정 문제’라고 주장합니다. 심지어 참사가 예고된 그날 미얀마 국군의 날 행사에 대표단을 파견했습니다. 3월18~19일 알래스카 앵커리지 미-중 고위급 회담에서 민주주의를 들먹거리며 볼썽사납게 공개 원투펀치를 날리던 국제사회 ‘그레이트 원(G1) 투(G2)’의 수준입니다. 전쟁 방지와 평화 유지를 위해 설립됐다는 국제연합 유엔은 두달이 지난 3월31일까지도 미얀마 사태를 ‘쿠데타’로 규정하지 못했습니다. 이 글이 제 손을 떠난 31일 긴급 안보리가 열릴 테지만, “여성, 청년, 아이들을 포함한 평화 시위대에 대한 폭력 사용을 강하게 규탄한다”던 3월11일 의장성명에서 얼마나 나아갈지 모르겠습니다. 30일까지 521명(정치범지원협회 집계)이 죽어갈 때 방패가 되어주지 못한 종잇장 같은 규탄과 제재를, 더는 ‘국제사회의 분노’라 쓰지 않겠습니다.

전정윤ㅣ국제부장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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