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보이 지제크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경희대 ES 교수
나는 블라디미르 푸틴이나 도널드 트럼프를 존경하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지만, 최근 바이든이 푸틴에 대해 한 말을 들으면 트럼프 시대의 어떤 측면이 거의 그리워질 지경이다.
지난 3월 바이든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푸틴이 살인자라고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바이든은 자신이 2011년 부통령 자격으로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푸틴의 면전에서 푸틴에게는 영혼이 없다고 말했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나는 푸틴의 눈에서 영혼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우리는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군요’라고 맞받아쳤습니다.”
바이든의 말은 2017년 트럼프가 했던 말과 날카로운 대조를 이룬다. 당시 트럼프는 기자가 푸틴을 살인자라고 부르자 “살인자는 미국에도 많습니다. 미국은 순결하다고 생각합니까?”라고 답하며 미국도 러시아와 다르지 않음을 암시했다. 트럼프는 현실에 대한 일말의 정직함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트럼프는 다른 국제정치 문제에 대해서도 어떤 온건함이 있었다. 이란과 북한에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 존 볼턴을 경질한 것이 그 예다. 트럼프는 분명 전쟁을 피하고자 했다.
반면 바이든 행정부는 더 개입주의적인 국제정치의 등장을 신호한다. 바이든이 코로나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코로나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등 진보적인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고 해서 바이든 행정부의 어두운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바이든은 살인자에게 영혼이 없다고 말했지만, 이는 틀린 말이다. 잔혹한 살인자들이야말로 자신의 적들에게는 영혼이 없다는 환상들을 만들어 자신이 저지르는 끔찍한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라도 ‘영혼’, 풍부한 내면의 삶이 필요한 이들이다. 거대한 정치적 범죄 뒤에는 언제나 종교적 신화나 시인이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를테면 인종청소 뒤에는 언제나 시가 있다. 왜 그런가? 우리가 이른바 포스트이데올로기 시대로 여겨지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대규모 폭력에 인민을 동원할 수 있는 힘을 지닌 것은 거대한 공공의 대의가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살인에 대한 거부감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느끼게 해주는 신성한 대의다. 살인자들은 적들의 종교나 인종이나 영혼의 유무를 신성한 대의로 내세운다. 물론 신성한 대의에 기대지 않고도 대규모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무신론자가 있을 수 있지만 이런 경우는 드물다. 대다수 살인자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인간의 기본적 감수성을 마비시키기 위해 신성한 대의를 필요로 한다. 종교적인 이념론자들은 종교가 악인도 선행을 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경험에 따르면 물리학자 스티븐 와인버그의 말이 차라리 맞을 것 같다. 와인버그는 종교가 없을 때는 선인은 선행을 하고 악인은 악행을 하지만, 오직 종교만이 선인이 악행을 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내가 푸틴에 비판적인 것은 그에게 영혼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의 영혼 속에 들어 있는 것 때문이다. 푸틴은 조국을 배신한 스파이들을 무관용으로 대할 것이라고 선포했다. “조국에 대한 반역은 세상에서 가장 큰 범죄다. 반역자들은 처벌받을 것이다.” 푸틴은 스노든과 어산지를 지지하는 척하지만 실은 이들에게 어떤 공감도 하지 않는다. 푸틴은 그저 자신의 적들을 괴롭히기 위해 그들 편을 드는 척하는 것이다. 러시아판 스노든들이나 어산지들이 어떤 운명에 처해지고 있는지 상상해보라. 푸틴은 스노든이 조국인 미국에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고도 말했다. 여기서 우리는 푸틴의 영혼이 어떤지 알 수 있다.
바이든이 자신의 정적에게도 영혼이 있음을 부정하는 일은 그가 이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저속한 인종주의가 드러난 것일 뿐이다. 바이든은 오바마가 상원의원이던 시절 그를 지지한답시고 이렇게 말했다. “오바마는 의견 전달이 명료하고, 명석하고, 깨끗하고, 잘생긴 최초의 주류사회 흑인이다.” 바이든의 말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행정부보다 나은 행정부로 판명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바이든의 영혼 때문이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바이든이 자신의 영혼에 충실하지 않을수록,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될 것이다.
번역 김박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