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호ㅣ에디터부문장
큰 선거 뒤 다음날, 정당 기자실 풍경은 극명하게 갈린다. 이긴 정당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기자들이 몰려와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대선 때는 정치부 이외 기자들까지 파견받아 각 언론사 부스마다 앉을 자리가 없다. 성명이나 보도자료 등을 전달하느라 당직자들도 부산하고, 당선자가 찾아와 활짝 웃는 얼굴로 일일이 악수하고, 축하를 받는다. 웃음소리가 넘쳐나고, 오후에는 당선 떡도 돌린다.
패한 정당은 거의 폐가 수준이다. 초상집은 사람들이라도 북적대지만, 패한 정당의 선거 다음날은 그냥 휑하다. 대표부터 말단 당직자까지 어디론가 사라지고, 조금 일찍 가면 전등도 안 켜져 어두컴컴하다. 대선 때는 기자들도 이긴 정당으로 지원 가고, 남은 기자들만 드문드문하다. 분위기는 착 가라앉았고, 침울하다.
대선의 경우, 기자들의 개인신상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긴 정당의 현장반장은 인수위 반장을 거쳐 청와대 출입기자로, 패한 정당의 현장반장은 다음 인사철에 정치부 바깥으로 나가게 되는 경우도 많다. 패한 정당은 야당이 돼 출입기자 숫자도 줄어든다. 요즘은 이런 스테레오 타입 방식에서 조금 달라지긴 했다.
그런데 그때 선거에 패한 정당에 앉아 있다 보면, 그 음울한 분위기 탓인지 ‘이 정당이 다시 선거에 이기는 날이 올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새누리당은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잇달아 승리한 뒤, 이후 각종 보궐선거에서도 연전연승했다. 심지어 세월호 참사 직후 열린 2014년 지방선거에서도 무승부를 기록했고, 계속된 정권발 악재와 오만 속에서도 7·30(2014년), 4·29(2015년) 재보궐선거에서 잇따라 승리를 가져갔다. “선거는 우리가 잘한다”, “우리에겐 승리 디엔에이(DNA)가 있다”고 뻐기는 등 기세가 대단했다.
그런데 2016년 총선부터는 정반대 상황이 벌어졌다. 촛불탄핵으로 벌어진 2017년 대선과 이후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까지 민주당이 압승을 거뒀다. 한국 정치의 역동성이 워낙 크다 하지만, 2015년에 2~4년 뒤 상황 급변을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돌이켜보면, 양쪽 다 해당 정당이 뭘 잘했다기보단 상대방 정당의 자책골 성격이 더 컸다. 그리고 선택은 민심이 했다.
역대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이번 서울·부산시장 선거는 사실상 전국 선거였다. 1년짜리 시장 선거에 ‘정권 심판’ 구호가 넘실대는 건 아이러니다. 하지만 대선을 1년 앞둔 터라, 당연하다. 지난달 29일 박영선 후보와 오세훈 후보의 첫 텔레비전 토론 서울 평균 시청률은 5.1%였는데, 투표권도 없는 경북 지역 시청률이 7.8%였다.
모두들 이번 선거를 역대 최악의 진흙탕 싸움이었다 한다. ‘생태탕’과 ‘페라가모’만 남을지 모른다. 정책은 선거 초기부터 사라졌는데, 후보자들 잘못만은 아니다. 이번 선거의 성격 탓이 더 크다. 검증과 네거티브의 구분도 늘 선 자리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선거 이후 양당은 달라져야 한다. 국민의힘은 그동안 당의 발목을 잡았던 ‘태극기 부대’와의 거리두기 또는 결별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당이 ‘중도’로 향할 때만 미래가 있음을 분명히 각인했으리라 본다. 남은 숙제는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듯’, ‘회칠한 무덤’처럼 겉으로만 포장하고 속은 여전한 습성, 그리고 시간 지나면 다시 ‘기득권층 지키기’로 회귀하는 당의 유구한 ‘전통’을 어떻게 혁파하느냐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이 고전을 면치 못한 건 갑작스러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 때문이 아니란 건 민주당이 더 잘 안다. 선거제도를 바꿔 위성정당을 만들어도 대승, 당헌당규를 바꿔 후보를 내도 초반에는 우세했다. 그러니 누가 뭐라 해도 ‘내 길’을 갔다. 누가 뭐라 하면 돌아봐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은 ‘진보’에게 ‘샤이’라는 말을 안겨준 걸 가장 죄송스러워해야 한다. 민주당 지지를 ‘진보’라 표현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 이도 있겠지만, 어쨌든. 군사정권도 아닌 민주당 정권에서 왜 민주당 지지한다는 걸 숨겨야 하나.
선거 이후 양당은 이긴 정당이든 진 정당이든 ‘앞으론 잘하려’ 무진 애를 쓸 것이다. 스윙보터가 많아진다는 건 정당으로선 무척 불편하지만, 늘 긴장을 늦추지 않게끔 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지닌다.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듯, 보궐선거 이후 달라질 한국 정당을 그래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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