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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계의 창] 인종차별, 영국이 백인 국가들의 모범인가 / 티모 플렉켄슈타인

등록 2021-04-11 21:40수정 2021-04-12 02:05

티모 플렉켄슈타인 ㅣ 런던정경대 사회정책학과 부교수

지난해 5월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발생한 조지 플로이드에 대한 경찰의 잔인한 살인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큰 충격을 줬다. 이 사건으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는 인종차별 반대 운동이 다시 점화됐고, 전세계 많은 도시에서 경찰 폭력에 대한 연대 시위가 벌어졌다. 급기야 대중의 분노는 영국을 포함해 각국 정부가 인종차별 문제를 주요 의제로 다루도록 만들었다. 영국은 미국 수준의 인종적 긴장을 경험하진 않고 있지만, 영국의 소수민족들은 경제활동과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불이익을 받아왔다. 이런 맥락에서, 보수당 보리스 존슨 총리가 이끄는 영국 정부는 자국 내 인종차별과 소수민족 차별을 조사하기 위해 ‘인종과 민족 격차 위원회’를 설립했다.

미국에서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짓누른 전직 경찰관 데릭 쇼빈에 대한 재판이 시작된 지 이틀 뒤인 지난달 31일 영국의 ‘인종과 민족 격차 위원회’는 264쪽 분량의 보고서를 내놨다. 위원회는 영국 사회의 고질적인 인종차별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지 않은 채, 지역과 가문, 계급 등으로 초점을 옮겨 민족 간에 서로 다른 삶의 기회의 차이를 설명했다.

위원회는 1999년 ‘맥퍼슨 보고서’ 이후 널리 받아들여진 영국 사회의 제도적 인종차별에 대한 주장도 반박하는 것 같다. 1993년 런던의 흑인 청년 스티븐 로런스의 죽음을 계기로 꾸려진 조사위는 범인들을 붙잡고도 아무도 기소하지 않은 런던 경찰에 대해 “피부색, 문화, 민족 등 때문에 적절하고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조직적으로 실패했다”고 규정한 바 있다. 위원회의 보고서는 인종차별주의의 영향을 경시하는 것처럼 보이며 영국이 다른 백인 중심 국가들의 모범인 것처럼 기술해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비판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인종과 민족 격차 위원회’의 이번 보고서를 불신하고 있다. 사회적 계급은 인종적 불평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그러나 제도적 인종주의에 대해 회의적인 위원회의 입장과 일상적으로 인종차별을 경험하는 영국 소수민족의 입장을 서로 조화시키기는 어렵다.

예컨대 런던의 젊은 흑인 남성은 불심검문을 당할 가능성이 평균보다 19배 더 높다. 흑인 여성은 백인 여성보다 사산을 경험할 확률이 2배, 임신 혹은 출산 중 사망할 확률은 4배 더 높다. 코로나19 사태에서 흑인이 코로나에 걸려 사망할 확률은 백인보다 4배 더 높다. 교육 분야는 어떤가. 대학 입시(A-level)에서 흑인 학생들은 실제 결과보다 교사의 예상 성적이 낮은 경우가 8.1%로 가장 높고, 아시안 학생들이 6.5%, 백인 학생은 4.6%였다. 심지어 서식스 공작 부인인 메건 마클조차 최근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인종차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정부는 인종차별 문제에 관한 사회적 발전을 ‘자축’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입장을 내세우려기보다는, 소수민족의 살아 있는 차별 경험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이 나라가 아직 직면하고 있는 거대한 도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영국이 ‘인종주의를 뛰어넘은 국가’가 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진보적인 사회·교육 정책 없이, 선의와 미사여구만으로는 개선할 수 없다. 정부는 서로 다른 사회적 그룹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담론을 장려해야 한다.

서구 사회에 비해 한국은 민족적으로 훨씬 동질적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결혼한 10쌍 중 1쌍이 외국인 배우자일 정도로 인종적 다양성이 증가하고 있다. 이는 인종적 다양성을 다뤄본 경험이 거의 없는 한국에서 다문화 아동의 수가 점점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정부도 이런 도전을 알고 있고, 다문화주의를 장려하고 있다.

그러나 서구의 경험을 돌아보면, 한국에서 소수민족의 완전한 사회적 통합을 촉진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조치가 필요하다. 일터와 학교, 가족, 일상생활에서의 사회적 통합을 위한 조속한 조치가 소수민족뿐 아니라 한국인들에게도 훨씬 유익하다. 다양성은 관리되어야 할 “위협”이 아니라 보다 흥미롭고, 창의적이며, 혁신적인 사회를 위한 흥미진진한 기회다. 다름은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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