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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잇 아웃, 헬프 아웃’의 추억 / 정세라

등록 2021-04-14 20:07수정 2021-04-15 02:38

정세라 l 사회정책부장

잇 아웃 투 헬프 아웃(Eat out to Help out)! 지난해 여름, 영국 런던 음식점 앞이나 누리집에서 흔히 보던 문구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곤경에 처한 외식업계를 돕기 위해 식당에 나가서 외식을 하자는 얘기다. 당시 영국 정부는 세금을 투입해 매주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식당 방문자에게 1인당 50%씩 10파운드(약 1만5천원) 한도에서 음식과 무알코올 음료 값을 할인해줬다. 비싼 런던 외식물가를 생각할 때 ‘보리스 총리 생큐’ ‘이게 웬 떡’을 연발할 일이었다. 만약 코로나19 팬데믹이 없었다면 말이다.

단계적으로 규제가 완화되긴 했지만 사람들은 3~6월 기나긴 봉쇄(록다운)에 지쳐 있었다. 1년 체류 일정으로 런던에 왔다가 ‘멘붕의 봄’을 보낸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뜨거운 햇볕 아래서 먹는 피시 앤 칩스와 맥주, 얼음 꽉 찬 아이스 음료는 사는 맛을 되돌려줬다.

사실 영국인들이 지나치게 ‘대범하게’ 느껴지는 터라 점심시간엔 감히 식당에 들어설 생각을 못 했다. 그래도 야외 테이블에 앉아 흥겨운 버스킹을 들으며 연어 스테이크를 즐겨보잔 유혹은 뿌리치기 힘들었다. 영국 정부도 가늠이 있으니 하는 거겠지…. 한가한 오후 서너시쯤 반값 점심을 먹었다. 그러다 보면 수개월 내내 씹어댔던 남의 나라 총리에 대한 미움도 좀 옅어졌다.

팬데믹 파고가 잦아든 8월의 태양은 아름다웠고, 누구나 할인은 좋아했다. 영국 정부는 이를 치적으로 자랑했다. 방역을 생각하면 식당 배달을 할인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쑤군댔지만, ‘밥 먹으러 나온 김에 돈 좀 쓰라’는 메시지가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여름에 반값 점심으로 재미를 본 정부 관료들은 가을 초입이 되자 좀 더 과감해졌다. 거리 유동인구를 늘리려면 시내 중심가와 대중교통이 안전하다는 걸 홍보해야 한다는 논의들이 이어졌다. 좁디좁은 런던 지하철을 탄 장관들이 번갈아가며 신문지상이나 방송에 등장하는 풍경이 이어졌다.

그 와중에 일일 확진자 수 추이는 하루가 다르게 변해갔다. 7월 초엔 하루 300명대로 바닥을 찍었으나 9월에 들어서자 급변했다. 2차 웨이브였다. 10월 초엔 하루 6천명대가 다음날 1만2천명대가 되고, 다음날 2만명대로 올라갔다. ‘더블링’이 저런 거구나 싶었다. 버티던 정부는 의료계가 비명을 지르자 그해 11월 다시 봉쇄에 들어갔다.

영국 정부가 방역과 경제 살리기 사이에서 메시지 혼선의 위험을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경제성장률은 주저앉은데다 임금노동자는 물론 자영업자까지 많게는 수입의 80%를 보전해야 하니 천문학적 재정 부담이 버거웠을 법하다. 우리와 달리 영세 자영업은 렌트비 등 고정비를 사실상 전액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했으니, 경제 살리기에 대한 조급함도 컸을 것이다.

하지만 ‘두마리 토끼 잡기’란 워낙에 어려운 과제다. 영국 정부는 이후로도 메시지 악순환을 반복했다. 11월 미니 록다운 뒤 12월 성탄절 연휴를 앞두고 잠시 북적였지만 자유의 여흥은 짧았다.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과 함께 기나긴 봉쇄로 들어갔다. 이후 영국 상황을 역전시킨 것은 가장 앞서 달린 백신 접종이었다는 건 많이들 아는 얘기다.

앞서 케이(K)방역의 공과 가운데 공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고통을 포함해 국민 모두의 일상 희생에 빚진 몫이 크다. 오세훈 새 서울시장이 자가검사키트를 수단으로 ‘유흥업소 영업제한 완화’ 같은 논란거리를 꺼낸 것은 이런 희생에 대한 국민적 인내심이 임계점에 달했다고 판단한 측면이 있다. 사실 정부도 자가검사키트 신속 도입을 꺼내 들며 실내체육시설 출입 활용을 거론하는 등 방역 완화 수단으로 이를 고민하는 흔적이 없지 않다.

방역과 경제 살리기 사이에서 메시지 혼선이 가중되면 4차 유행 초입에서 어이없는 사태 전개를 부를 수 있다. 정부와 국회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희생에 대한 손실보상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그래야 백신 수급이 불안한 상황에서 거리두기 등 방역카드를 단계적으로 쓸 여지가 생긴다. 최근 많이들 부러워하는 접종 선두 국가가 가까운 과거에 겪었던 혼선이 머나먼 남의 얘기는 아니란 얘기다.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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