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산하 ㅣ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무엇을? 이름에 답이 있지 않은가. 산림 파괴 말이다. 에이 설마, 과장이겠지. 좀 과한 것 아닌가? 이렇게 느꼈다면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그것이 상식이기 때문이다. 숲을 가꾸는 일을 담당하는 국가 기관이 설마 숲을 해치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없다. 다들 속고만 산 것 같아도 실은 어떤 기본적인 믿음이 마음 밑바닥에는 깔려 있다.
그런데 바로 그 믿음을 산산조각 내는 일이 지금 모두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산림청이 나서서 산림을 파괴하고 있다. 조금도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이런 칼럼에 일부러 낚시성 제목을 달아놓고 실은 내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필자가 볼 이득은 아무것도 없다. 아니 차라리 정말로 그저 과장된 표현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두렵게도 사실이다.
올해 산림청이 야심차게 내놓은 사업은 이른바 ‘30년 동안 30억그루 나무 심기’! 얼마나 희망찬 목표인가! 이를 접한 정상인의 머리에는 다음과 같은 그림이 펼쳐진다. 아무것도 없던 황무지에 하나둘 묘목이 심어진다. 비가 내리고, 햇볕을 쬐면서 묘목은 무럭무럭 자란다. 숲이 점점 늘어난다. 대한민국이 푸른색으로 뒤덮인다. 암 그래야지.
실상은 아니다. 숲에 있는 나무를 베고 거기에 새로 심는다는 것이다. 아니 뭐라고! 여러분의 이 격앙된 반응이 옳은 것이다. 하지만 산림파괴청의 생각은 다르다. 1970년대에 조성된 산림이 이젠 노령화되어 탄소흡수량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놓은 발상은? 이른바 ‘산림의 영급(나무의 나이) 구조개선’, 오래된 나무를 없애고 그 자리에 새 나무를 심겠다는 것이다. 말문을 막히게 할 만큼 충격적이다.
첫째, 과학적으로 맞지 않다. 오래된 숲의 탄소 저장량이 떨어진다는 것은 과거의 추정일 뿐 전혀 정설이 아니다. 오히려 최근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는 연구가 증가하는 추세이다. 가령 <네이처>에 실린 2008년 논문은 수백년 된 숲조차 계속해서 우수한 탄소 저장력을 보인다고 하였고, 같은 학회지 2014년 논문은 나무가 클수록 탄소 저장 속도가 늘어나는 것을 밝혔다. 또한 글로벌 생태와 생물지리학지에 2020년 실린 논문은 오래된 숲이 탄소 저장에 크게 기여한다고 밝혔고, 올해 산림생태와 관리지에는 성숙한 숲이 최대의 생물량을 보유한다고 하였다. 나무만이 아니라 숲 아래 토양 또한 탄소 흡수에 큰 역할을 하며, 생태계가 온전하게 갖춰진 서식처가 탄소 저장력도 높다.
둘째, 숲은 단순 탄소 저장고가 아니다. 다른 수많은 기능에 추가적으로 탄소 저장도 하는 것일 뿐, 탄소 저장력 하나로 숲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마치 사람의 가치를 몸무게로 판단하는 격이다. 공기와 물의 정화, 영양물질 순환, 토양 안정 등 숲이 제공하는 엄청나게 다양한 생태계 서비스는 갑자기 다 망각했단 말인가? ‘숲=탄소’의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셋째, 숲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을 떠나, 숲은 다른 수많은 생물의 서식처이다. 이런 말까지 정말 반복해야 하나? 산림파괴청에 근무하는 그 수많은 석사, 박사들은 자신들이 전공한 그 생물이 그 숲에 산다는 것을 정녕 모른 척할 것인가?
넷째, 기후변화는 산림이 다 책임질 일이 아니다. 탄소 걱정해서 숲부터 자르는 것은, 학습 역량을 강화한답시고 반의 가장 우수한 학생부터 ‘조지는’ 것과 같다. 현대사회의 작동 방식 자체에서 탄소배출량을 대폭 줄이는 것이 최우선이고, 산림에게 약간의 역할을 주더라도 한참 나중의 얘기이다. 하더라도 숲을 늘려야지 교체는 얼토당토않다.
숲은 인간이 싼 똥을 치워놓는 정화조가 아니다. 산림파괴청은 숲을 숲으로 대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