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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대한변협의 이상한 추첨

등록 2021-05-02 16:52수정 2021-05-03 04:36

지난 21일 대한변호사협회가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제10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를 1200명 이내로 확정하라는 집회를 개최하고 있다. 변협 제공
지난 21일 대한변호사협회가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제10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를 1200명 이내로 확정하라는 집회를 개최하고 있다. 변협 제공

익명의 변호사 ㅣ 대한변호사협회 회원

대한변호사협회(변협)는 변호사들의 법정단체로, 변호사의 품위를 보전하기 위한 기관이다(변호사법 제78조 1항). 그런데 최근 변협은 변호사의 품위를 크게 실추시켰다.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신입 변호사는 6개월 이상 법률사무에 종사하거나 변협 연수를 받아야만 법률사무소를 개설하거나 법무법인 등의 구성원이 될 수 있고, 수임을 할 수 있다(위 법 제21조의2 1항, 제31조의2). 최근 2년간 700명 이상(2019년 740명, 2020년 789명)의 신입 변호사가 변협 연수를 받았다.

그런데 변협은 지난달 23일 올해 합격한 신입 변호사 중 29일까지 신청하고 추첨으로 뽑힌 200명에 대해서만 연수를 제공하겠다고 공지했다. 이제 막 변호사시험 합격증을 받아든 신입 변호사 중 500명(4월30일 추첨 탈락 인원은 345명이지만, 최근 2년간 연수 인원으로 미뤄볼 때 5월1일 이후 변협 연수를 신청할 신입 변호사가 155명 이상 있을 것으로 예상되므로 이하 500명으로 봄)에게, 그들이 얻어낸 법정 변호사 자격(변호사법 제4조 3호)에도 불구하고, 변협이 임의로 연수 제공을 거부한 것이다.

위 조치는 법률 용어로 말하자면 “가해의사”에 기한 것이다. 오로지 신입 변호사에게 고통을 주고 손해를 입히기 위한 권리행사로, 신의성실원칙(민법 제2조) 위반이다. 변협은 연수인원 제한의 이유로 연수의 내실화와 예산의 부족을 내세웠다. 모두 전혀 이유가 없다. 먼저, 이번 연수는 첫 2개월간 온라인 비대면 강의로 진행된다. 온라인 비대면 강의인데 수강생이 늘어난다고 해서 내실이 부족해지는가? 그럴 수가 없다.

다음, 예산 문제를 보자. 위 조치가 없다면 500명이 110만원씩 수강료를 추가로 납부할 것이다. 수입이 5억5천만원 증가한다. 변협 입장에서는 온라인 비대면 강의 수강생이 500명 늘어나기 때문에 추가로 부담할 비용은 0에 가깝다. 순수익이 5억5천만원이다. 500명이 모두 5월 중 구직에 성공할 경우에도 일부만 환급하므로 1인당 수강료 36만원씩, 1억8천만원의 예산이 추가로 확보된다. 만약 6월 한달 동안 전원이 구직에 성공할 경우에는 모두 비대면 강의를 듣던 중 나간 것이니 추가 비용은 없는 반면 그들이 낸 110만원은 단 1원도 환불하지 않으므로 최대 5억5천만원의 예산이 충당된다. 이런 환급 정책이 정당한지의 문제는 별론으로 한다.

결과적으로 위 조치만 없었다면 1억8천만원~5억5천만원의 예산이 추가로 확보되므로, 연수의 내실은 유지하면서도 예산을 아낄 수 있었다. 변협이 위 조치의 근거로 든 두가지 이유 중 하나는 사실이 아니고, 다른 하나는 오히려 위 조치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인원을 제한하는가? 회원들의 소중한 회비를 사실상 1억8천만원~5억5천만원 더 축내면서까지, 오로지 500명의 신입 변호사에게 고통을 주고 손해를 입히기 위해? 이런 “가해의사”에 기한 행위가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된다는 것은 전국 25개 로스쿨에 입학한 신입생이라면 누구나 1학년 1학기 민법 수업 첫번째 시간에 배운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으나 연수 대상인 700명 중에는 상대적으로 더 취약한(나이가 많거나, 몸이 아프거나, 변호사시험을 몇번 더 응시해서 합격했거나, 상대적으로 법률사무종사기관이 더 적은 지방 소재 로스쿨 출신 등) 신입 변호사가 많다. 변협은 바로 이런 신입 변호사, 변호사 중 가장 취약한 이들을 지키고, 그들의 품위를 보전하기 위한 기관인데, 회원들이 그 일을 하라고 선출한 집행부가 정반대되는 일을 했다. 흔한 말로 ‘갑질’을 한 것이다.

변협의 이상한 추첨은 변호사법상 감독권한(제86조 1항)을 가진 법무부가 추첨 하루 전인 4월29일 개입했음에도 4월30일 강행되었다. 545명의 신청자 중 345명을 탈락시킨 것이다. 변호사로서, 변협 회원으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다. 신청자 전원에게 연수를 제공하고, 추가 신청도 접수해야 한다. 이 일을 주동한 책임자는 변협 연수 첫날 연수를 신청한 신입 변호사 전원에게 진정성 있게 사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사는 연대책임을 진다. 현 집행부는 이사회에서 맡은 바 임무를 다하여, 두번 다시는 변호사 3만명 전체의 얼굴에 먹칠하는 일이 자행되도록 좌시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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