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선의 풀무질
경기도가 앞으로 ‘살처분’ 대신 ‘안락사 처분’이라는 말을 쓰겠다고 한다. 지난 27일 동물복지위원회에서 내린 결정이다. 동물보호과장은 “경기도의 용어순화 노력이 동물권에 대한 인식 개선 및 가치관 형성”의 계기가 될 것이라 밝혔다. 과연 ‘안락사 처분’이 동물의 권리를 위한 것일까?
경기도가 말을 바꾼 이유는 최근 한 용역업체가 살아 있는 닭을 파쇄기에 넣어 갈아 죽이는 영상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도는 해당 업체를 동물학대 혐의로 고발했다. 조류인플루엔자 긴급행동지침에 따르면 닭과 오리를 비닐로 덮고 이산화탄소를 주입하여 질식시키는 것이 ‘안락사’다. 그 후 사체를 파쇄기로 ‘렌더링’하여 비료로 쓰는 것이 ‘친환경’ 처리법이다. 죽여서 갈아야 되는데 산 채로 갈았기 때문에 동물학대라는 것이 경기도의 논리다.
국가가 살처분에 관해 쓰는 말들은 어지럽다. 가스실 학살이 어느 순간 ‘안락사’이자 ‘동물보호’, ‘동물복지’, 심지어 ‘동물권’으로 둔갑한다. 국가가 수행하는 극악무도한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완곡어법을 쓰다 보니 말이 이상해진다.
살처분이 무엇인가? 육식주의 사회가 공장식 축산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를 통해 자행하는 대학살이다. 대한민국이 최근 10년간 조류인플루엔자를 이유로 학살한 닭과 오리는 7500만명이다. 발생 농가뿐만 아니라 반경 3㎞ 안에 있는 모든 가금류를 죽인다. 조류인플루엔자는 말 그대로 감기처럼 2~3년마다 찾아온다. 야생조류를 탓하지만 철저한 인재다. 전염병 예방을 위해서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기본 아닌가? 밀집형 사육은 전염병을 낳는 시한폭탄이다.
정부는 원래 공무원과 군경을 동원해 대학살을 저질렀다. 이들의 76%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었다. 과로사가 속출했다. 부담이 커지자 2014년부터 정부는 대학살을 외주화했다. 사장 아무개가 200억원 넘게 벌었다는 소문을 듣고 전국에서 업체들이 생겨났다. 이제 대학살은 비즈니스다. 지자체마다 수십억원을 쓴다. 한 방역업체 사장은 재작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왜 (조류인플루엔자가) 안 터지는지 모르겠어. 다들 (마음이) 똑같아요. 정말 이상해요. 왜 안 터지지? 다들 바이러스를 그냥 심을까 이런다니까 … 닭이랑 오리 빼고 다들 터지길 바라고 있지. 정말 올겨울에 딱 50억만 벌었으면 좋겠는데….”
대학살 현장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절대다수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동물의 사체와 부산물을 계속 싼값에 먹을 수 있도록 몽골, 중국, 네팔, 스리랑카,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의 사람들이 학살을 떠맡는다. 외주의 고리가 길어질수록 책임은 분산되고 사태의 본질은 흐려진다. 고통이 돈으로 환산되는 과정에서 악의 근원에 대한 사유는 실종된다.
살처분은 공장식 축산이라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범죄를 지속하기 위한 눈가림일 뿐이다. 대한민국은 2020년에만 12억명이 넘는 동물을 죽였다. 파쇄기로 죽이든, 가스실에서 죽이든, 도살장에서 죽이든, 결국 다 인간이 먹기 위해 죽이는 것이다. 육식주의라는 이데올로기는 육식이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좋다고 가르친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육식은 불필요하고 비윤리적이다. 인간은 동물을 먹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다. 그런데 국가는 육식주의를 변호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파쇄기와 가스실의 차이를 구태여 강조한다. 그러면서 도살장에서 일어나는 합법적 대학살을 숨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속 ‘진실부’는 프로파간다 부서다. 진실부의 슬로건은 “전쟁은 평화”, “자유는 노예”, “무지는 힘”이다. “살처분은 안락사”라는 ‘동물복지위원회’의 말은 다분히 오웰적이다. 살처분은 대학살이다. 동물을 위한 길은 탈육식, 탈축산밖에 없다.
가수·밴드 ‘양반들’ 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