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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치형의 과학 언저리] 인도에서 쏟아지는 ‘숫자 너머’의 고통

등록 2021-05-06 15:38수정 2021-05-07 02:36

인도 화장터의 장작더미는 인도 정부의 문제를 폭로하는 동시에 숫자와 현실 사이의 간극, 혹은 숫자 뒤에 있는 인간의 경험을 가리킨다. 그것은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바로잡힌다고 해도 사라지지 않고 쌓여 있을 기억이다.

전치형ㅣ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하루에 두어번씩은 ‘코로나 라이브’ 웹사이트에 들어가 본다. 지자체가 공지하는 코로나19 확진자 수를 실시간으로 집계해서 보여주는 곳이다. 어차피 다음날 오전이면 24시간 동안 집계된 확진자 수가 공식적으로 발표되겠지만, 마치 외출 전 기온을 확인하듯이 그때그때 확진자 수를 찾아보는 일이 습관이 되었다. 내가 사는 도시의 숫자도 살펴보고, 서울에 갈 일이 있는 날이면 수도권 숫자도 확인한다.

보기 편한 형식으로 매일 갱신되는 숫자는 이상한 안도감을 준다. 확진자 수가 갑자기 늘어나고 좀처럼 떨어지지 않을 때에도, 그 사실을 정확히 표현하는 숫자가 있다면 정부와 전문가들이 이 사태를 열심히 추적하고 있고 어느 정도 관리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숫자의 형태로 데이터를 정확하게 수집하고 신속하게 제공하는 것은 재난에 대응하는 정부의 역량을 가늠하는 지표가 된다. 확진자 수가 급증하는 것 못지않게 두려운 상황은 숫자를 파악하고 제공하는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숫자는 사태의 종결에 대한 희망을 준다. 최근에는 관심이 확진자 수에서 백신 접종 수로 옮겨갔다. 확진자 수만 보다가 이제는 백신 접종 수를 보고 있는 상황 자체가 코로나19 재난의 해결 국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백신 접종이 일부 부유한 국가에 집중되고 있지만, 그래도 세계적으로 백신 접종 10억회를 달성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공통의 목표를 향해 한걸음씩 나아간다는 생각도 든다. 백신 접종이 어떤 숫자를 넘어서고 그에 따라 신규 확진자가 어떤 숫자 아래로 내려가면 비로소 코로나19의 오랜 유행이 끝나리라는 기대가 생긴다. 목표 숫자에 도달하는 것이 곧 일상으로의 복귀를 알리는 신호인 것만 같다.

그러나 14억 인구가 있는 인도에서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면 종결이나 복귀가 아직 꽤 멀리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공식통계에 따르면 최근 인도의 하루 확진자는 30만명 이상, 하루 사망자는 2천명 이상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이렇게 큰 공식 숫자도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뉴욕 타임스>가 인터뷰한 미시간대학의 역학자는 실제 사망자 수가 공식 발표보다 2배에서 5배 많을 것이라고 추정하면서 “이것은 완전한 데이터 학살”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를 사인으로 적시하지 않는 사례들이 쌓이고 쌓여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냈다. 실수이든 의도적 누락이든 재난 상황의 불행한 죽음은 언제나 적게 집계되는 경향의 한 극단을 보여준다.

인도 정부의 사망자 통계와 실제 사망자 수의 차이를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숫자를 집계하는 힘 자체가 정치적인 권력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의지를 놓아버리면 숫자는 영원히 미궁에 빠지게 된다. 그래도 시도해본다면 시신이 모이는 곳을 직접 찾아가서 묻고 기록하는 정도일 것이다. <뉴욕 타임스>는 인도의 각 주정부가 발표하는 사망자 수보다 훨씬 많은 시신이 지역 화장터로 들어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령 인도의 보팔시는 4월 중순의 13일간 코로나19 관련 사망자가 41명이라고 공식 발표했지만, <뉴욕 타임스>가 지역 화장터와 묘지를 취재해서 얻은 사망자 수는 1천명 이상이었다. 화장터 관리자에게 제대로 설명을 들을 수 없었던 기자는 시신들이 동시에 화장되는 자리 근처에 쌓여 있는 장작더미를 묘사하는 것으로 기사를 마무리했다. 끝없이 새로 잘라 공급해야 하는 장작더미의 크기가 정부 발표 숫자보다 죽음의 현황을 더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인도 화장터의 장작더미는 인도 정부의 문제를 폭로하는 동시에 숫자와 현실 사이의 간극, 혹은 숫자 뒤에 있는 인간의 경험을 가리킨다. 그것은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바로잡힌다고 해도 사라지지 않고 쌓여 있을 기억이다. 우리는 체계적이고 정확한 숫자를 통해서 코로나19라는 재난에 대응할 수 있지만, 이 재난의 결과를 숫자로만 정리하고 기억할 수는 없다. 확진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죽은 사람과 살아남은 사람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집계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었다. 이 고통스러운 경험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숫자가 다 집계된 다음 비로소 시작될 긴 회복 과정의 기초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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