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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최재봉의 문학으로]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등록 2021-05-06 16:06수정 2021-05-07 02:38

최재봉ㅣ책지성팀 선임기자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표절 논란을 낳은 이인화의 소설 제목으로도 알려진 이 문장의 출처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이다. 자신에 대한 세 딸의 사랑을 시험했던 리어왕이, 달콤한 말로 그 시험에 통과해 아비의 권력과 영토를 물려받은 맏딸 고너릴이 하루아침에 표변해 저를 박대하자 혼란과 당혹 속에 자신의 정체성과 지위를 따져 묻는 독백 같은 대사다. 어리석어서 불행해진 리어왕의 교훈은 그것대로 마음에 새겨 마땅하겠지만, 최근 문학계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에는 그것과는 다른 결의 성찰과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 몇 가지 사례를 보자.

영국에서 시행하는 문학상 중에 ‘여성소설상’(Women’s Prize for Fiction)이 있다. 1991년 부커상 최종후보 여섯 작품이 남성 작가들의 작품만으로 도배된 일을 계기로 만들어진 상이다. 메릴린 로빈슨, 제이디 스미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등 역대 수상자 면면이 화려하다. 지난 3월 올해의 예비 후보 열여섯 작품이 발표되자 한 여성주의 작가 모임이 공개서한을 내놓았다. 이들은 트랜스젠더 작가 토리 피터스가 후보에 포함된 것을 두고 “여성 작가들이 우리 자신의 상을 받을 가치가 없으며, 남성들이 우리의 명예를 전유하도록 내버려둬도 괜찮다는 강력한 신호”라며 비난했다. 이에 대해 상을 주관하는 쪽에서는 4월 초에 성명을 내어 “특별하고 다양한 후보작들을 매우 뿌듯하게 생각한다”며 후보 작가들을 “헐뜯고 괴롭히려는 어떠한 시도도 개탄한다”고 맞섰다. 지난달 28일 발표된 최종후보 명단에서 피터스가 탈락하면서 소동은 일단락되었지만,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올해 여성소설상 심사위원장을 맡은 버나딘 에바리스토는 흑인 여성 작가로는 처음으로 2019년 부커상을 수상한 이다. 한국에서도 번역 출간된 그의 수상작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은 10대 소녀부터 90대 노인까지 열두 인물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작 형식에 담은 소설이다. 그는 부커상 수상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백인에 관해 쓸 수 없고 백인 작가는 흑인에 관해 쓸 수 없다”는 식의 “문화적 전유 개념은 완전히 헛소리”라고 일갈한 바 있다.

문화적 전유(cultural appropriation)란 탈식민주의 문화 이론에서 주로 쓰이는 말로, 다수 집단에 속한 예술가가 소수 집단의 문화적 가치나 정체성을 차용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특히 지배 집단이 피지배 집단의 문화를 전유할 때 그것은 고유한 문화적 자산에 대한 절도와 착취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렇게 착취된 문화 자산을 되찾아오는 행위를 재전유(reappropriation)라 이르며, 거꾸로 소수 피지배 집단이 다수 지배 집단의 문화를 저항적·해방적 목적을 위해 전유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에바리스토의 말은,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나’밖에 없다는 폐쇄적이며 방어적인 태도가 예술에서 상상력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로 이해할 수 있겠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나폴리 4부작’을 쓴 익명 작가 엘레나 페란테의 정체를 밝혀냈다는 탐사보도 기자 클라우디오 가티의 ‘특종’은 주요 언론과 작가들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은 바 있다.(‘최재봉의 문학으로’ 2016년 10월21일치) 가티가 금전 출납 기록과 부동산 거래 내역 같은 개인 정보를 근거로 번역가 아니타 라야가 페란테라고 보도했던 데 비해, 몇몇 문체론 전공 학자들은 라야의 남편인 작가 도메니코 스타르노네가 진짜 페란테라는 논문을 내놓았다. 이들은 스타르노네와 페란테의 소설 문체 비교를 통해 그런 결론에 이르렀다고 주장하는데, 스타르노네가 익명을 택한 까닭에 대한 설명이 눈길을 끈다. 그중 한 사람인 엘리사 소트주(하버드대 비교문학 박사과정)에 따르면 “남성 작가가 여성 인물에 관해 쓰는” 것에 대한 비판을 피하고, 세계적인 여성 문학 바람에 편승하고자 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페란테가 정말로 스타르노네인지, 설사 그렇다 해도 그가 여성 이름을 필명으로 삼은 까닭이 소트주의 설명대로인지는 확인이 필요하겠지만, 우리의 논의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주장임에는 틀림이 없다. 성별이든 아니면 인종이나 계급 차원에서든, ‘문화적 전유’ 논의가 문학적 상상력을 게토화해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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