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소수민족 무장단체 중 하나인 와주연합군(UWSA)이 2019년 4월17일 자신들의 창군 30주년 기념 열병식을 열고 있다. 제인스 누리집 갈무리/AFP 자료사진
[편집국에서] 전정윤ㅣ국제부장
지난달 하순 미얀마(버마) 양곤에서 쿠데타 반대 시위를 취재하던 일본인 프리랜서 기자 기타즈미 유키가 미얀마 경찰에 연행되는 것이 목격됐습니다. 기타즈미는 앞서 2월26일에도 구금됐다가 하루 만에 풀려났습니다. 2007년 미얀마 민주화 시위 때는 일본 사진기자 나가이 겐지가 군경의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나가이 기자가 시민들을 추적하는 군인들을 촬영하려 하자, 한 병사가 다가가 그의 가슴에 총을 쐈습니다. 나가이 기자는 죽어가는 순간에도 손에서 카메라를 놓지 않았고, 그 모습이 다른 기자의 카메라에 담겼습니다. 지구촌은 그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했으나, 그의 마지막 순간은 세계 언론사에 ‘기자정신’을 표상하는 숭고한 장면으로 기록됐습니다.
자칫 체포와 사망의 위험도 무릅써야 하는 국외 분쟁지역 취재는 현지 사정에 어두운 기자가 섣불리 출장 취재를 가기 어렵습니다. 그 때문에 서방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만 해도 분쟁지역을 전문적으로 취재하는 프리랜서 기자와 피디가 많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1990년대 초 <한겨레21>이 처음으로 정문태 ‘분쟁지역 전문기자’를 호명한 지 30년이 흐른 지금도, ‘분쟁 전문’으로 부를 수 있는 언론인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정 기자는 “가장 근본적으로는 그 이름을 단 이들의 ‘전문성’이 문제고, 그다음은 한국 언론의 구조적 문제”라고 말합니다. “제대로 된 전선(전쟁) 기자를 키우려면 막대한 시간과 투자가 필요한데, 한국 언론이 그런 걸 추구해본 적이 없다”는 뼈아픈 지적입니다. 대부분의 한국 언론은 “프리랜서 기자들이 자기 돈 들여 취재해 오면 원고료를 주고 받아쓰는 정도”였고, 이는 “먹고살기도 힘든 프리랜서들이 전문성을 키울 수 없다”는 뜻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겹친 미얀마 쿠데타 국면에서, 미얀마에 자사 기자를 출장 보낸 한국 언론사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애초부터 미얀마에 처음 가는 한국 기자가 60여년째 내전 중인 이 나라의 복잡한 정치 상황을 제대로 취재하기는 어려울 거라 판단했습니다. 현지 취재를 포기했을 때, 현지 특파원을 둔 서방 언론사가 쏟아낸 보도와 실제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어려운 숙제가 남았습니다.
<한겨레>는 외신의 주요 내용을 전하되, 현지 언론과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하는 쪽으로 보도 방향을 잡았습니다. 지금까지 아홉번 연재된
천기홍 양곤대 세종학당 교수(부산외국어대 미얀마어과 특임교수)의 ‘미얀마 편지’, 조만간 보도될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 피디(PD)와 현지 언론인들의 협업 기사 등이 그 결과물입니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 100일’을 하루 앞둔 10일치 1면에는,
토요판부가 준비한 정문태 기자의 버마 국경 르포(‘“버마인이 필요할 때만 연대” 소수민족들 이유 있는 냉소’)가 게재됐습니다.
2월1일 군부 쿠데타가 벌어진 이래 외신과 이를 받아쓴 국내 언론은 줄곧 아웅산 수치와 민족민주동맹(NLD)이 주축인 연방의회대표위원회(CRPH)가 만든 국민통합정부(NUG)에만 초점을 맞춘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그러나 정 기자의 기사엔 인구의 40%를 차지하며, 국민통합정부가 반군부 연대의 핵심 축으로 밝힌 소수민족의 목소리가 담겼습니다. 이는 “버마 사회의 두 기본 모순이 ‘민주화 문제’와 ‘소수민족 문제’인데, 그 둘을 떼어놓고 평화는 불가능”하며 “버마인과 소수민족 사이의 불신감을 걷어내지 않고는 평화의 가능성을 탐색할 수 없다”는 30년 버마 전문가의 메시지이기도 했습니다.
정 기자는 “10년쯤 전선을 뛴 다음에야 어렴풋이 ‘전쟁’이란 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한국 언론사는 특정 기자한테 장기간 전쟁 취재를 전담시킬 만한 여건이 아닙니다. 하지만 쿠데타를 일으킨 미얀마 군부와 한국 기업의 경제 협력이 논란이 되는 세상입니다. 가장 첨예한 정치와 비즈니스의 현장인 분쟁지역에서 한국은 이미 서방의 눈으로만 분쟁을 바라봐도 되는 제3자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분쟁지역을 누빌 의지와 전문성이 있는 프리랜서 언론인들에게 더 많은 기회와 그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주는 것, 이를 통해 우리 독자에게 필요한 정보와 시각을 제공하는 것, 한국 언론이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고민해야 할 지점인 것 같습니다.
ggu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