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는 양상이 피자게이트와 묘하게 닮았다. 이쯤 되면 손가락게이트라 불러도 되겠다. 다수 언론이 손가락게이트 신봉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중계했다. 상업주의에 물든 언론사에는 짧은 시간에 쉽게 써서 조회수 올리기에 최적인 소위 ‘가성비 갑’인 소재였을 거다.
김민정 |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2016년 미국. 워싱턴디시(D.C.)에 있는 피자집 코멧 핑퐁은 대선을 앞두고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가게가 됐다. 민주당 클린턴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장 포데스타가 소아성애, 인신매매를 하는 장소로 이 가게 지하실이 지목됐기 때문이다. 포데스타가 코멧 핑퐁 사장과 주고받은 이메일에 ‘피자’라는 단어가 자주 나오는데, ‘피자’는 소아성애자들이 사용하는 은어라는 거였다. 피자집 사장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아이들 사진이 유난히 많고, 세모 모양의 가게 로고가 소아성애자들이 사용하는 상징과 유사한 모양이라는 점 등이 민주당 고위인사들이 소아성애, 인신매매에 연루되어 있다는 음모론의 ‘증거’로 제시됐다. 일명 피자게이트다.
헛소문이었다. 코멧 핑퐁엔 지하실조차 없었다. 하지만 가게 주인이 아무리 아니라고 말하고 <뉴욕 타임스>가 피자게이트 신봉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조목조목 반박해도, 믿는 사람들에겐 아무 소용이 없었다. 피해는 컸다. 피자집 온라인 페이지엔 음식과 서비스에 대한 평가 대신 욕설과 인신공격이 넘쳐났다. 가게 주인, 종업원, 그들의 가족들은 살해 협박 등에 시달리며 안전에 위협을 느꼈다. 급기야 2016년 12월엔 노스캐롤라이나에 사는 28살 청년이 ‘직접 피자게이트를 수사하고 어린이를 구하겠다’며 소총을 들고 코멧 핑퐁을 찾아와 총알 세발을 쐈다. 2019년 1월엔 방화 사건도 발생했다. 피자게이트 신봉자들은 근처의 다른 피자가게, 커피숍, 서점, 프랑스 음식점, 나중에는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음식점, 텍사스 오스틴에 있는 음식점까지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끝나는가 싶던 헛소문은 2020년 틱톡을 중심으로 젊은층에서 다시 확산됐다. 부활한 헛소문은 더 큰 규모로 퍼져나갔다. 코멧 핑퐁 사장은 다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2021년 한국. 지에스(GS)25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일부 누리꾼이 캠핑 홍보 포스터 영문 문구의 첫 자를 따서 역순으로 조합하면 만들어지는 단어, 소시지를 짚는 손가락 모양, 별과 달 모양 등을 ‘근거’로 지에스25는 남성을 혐오하는 기업이라 규정하고 불매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지에스25 쪽이 남성을 비하하려고 만든 포스터가 아니라고 밝혔고, 그 손가락 모양이 봉준호, 김연아, 김무성 등 수많은 유명인이 흔히 사용해온 제스처라는 걸 보여주는 사진 모음도 나왔지만 소용이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일부 누리꾼의 극단적 목소리를 ‘경청’한 경찰청은 기존 홍보자료에 들어 있던 손가락 모양을 수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섣부른 대응은 확신에 찬 사람들에게 ‘하면 된다’는 효능감을 심어줬고, 손가락 모양을 추적해 공격하는 일은 다른 기업, 예능프로그램 등을 상대로 지속되고 있다. 돌아가는 양상이 피자게이트와 묘하게 닮았다. 이쯤 되면 손가락게이트라 불러도 되겠다.
다수 언론이 손가락게이트 신봉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중계했다. 상업주의에 물든 언론사에는 짧은 시간에 쉽게 써서 조회수 올리기에 최적인 소위 ‘가성비 갑’인 소재였을 거다. 손가락게이트 신봉자들의 주장이 마치 타당한 근거가 있는 말인 양 퍼 나르거나, 스스로를 ‘이미지 데이터베이스를 자주 활용하는 디자인 전문가’라 밝힌 익명의 온라인 댓글을 인용해 헛소문에 힘을 실어준 보도도 나왔다. ‘소비자의 심기를 살피지 못한 아쉬운 마케팅’이라며 마치 손가락게이트 신봉자들이 펼치는 불매운동이 정당한 소비자 주권 운동인 양 포장하는 보도도 있었다. 이런 기사를 쓰는 목적은 과연 뭘까? 사람들이 원해서, 클릭수가 올라가서라는 이유를 대기엔 이런 식의 보도가 우리 공동체에 가져올 해악이 훨씬 크지 않은가?
헛소문을 온라인에서 퍼뜨리는 사람들, 자극적인 이야기로 사람들의 주목을 끌려는 사람들은 기성 언론이 자신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자신들의 주장을 보도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둔다. 연구자들이 기자와 언론사에 정보원 해킹에 유의하고, 온라인상의 허위정보가 임계점에 도달하지 않았다면 아예 보도하지 않는 ‘전략적 침묵’을 취할 것을 권하는 이유다. 기성 언론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견해와 주장을 여과 없이 증폭시키는 스피커가 아니다. 소리와 소음은 다르다. 적어도 온라인에 떠도는 터무니없는 헛소문에 산소를 공급해 불씨를 키우는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 때론 모르는 게 약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