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산하의 청개구리
개구리는 지표동물이다. 비록 미물이지만 개구리를 들여다보면 서식지의 건강상태가 보이기 때문이다. 피부호흡을 하면서 물질이 체내에 쉽게 투과하고 습기에 민감하기 때문에 외부 환경의 변화에 따른 흥망이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전세계 양서류의 급감이 지구 생태계 파괴의 현 상황을 잘 반영한다고 보는 이유이다.
이처럼 지표는 언제나 전체를 일일이 다 파악할 수 없을 때 판단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 애초에 지표라는 것 자체를 두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우리나라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이 과연 어떠한지 판단하기 위해 최근에 실시된 정책들의 경향성을 일종의 지표로 삼아볼 수 있다. 여기서는 자연환경 분야 또는 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책들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지난 수십년간 줄기차게 진행되어온 이 나라의 자연파괴는 너무나 강력하게 뻔뻔한 개발 마인드가 주도한 전면적인 공세였다. 탐욕과 집단 및 지역 이기주의가 겉으로 시퍼렇게 드러난 각종 개발 사업들은 대놓고 자연의 희생을 요구하고 경제적 이득을 밝혔다. 이득의 주체가 누구인지도 분명히 했다. 우리 국민 또는 지역 주민이 당연한 수혜자였고, 이를 위해 자연이 인간에게 복속되는 것이 ‘세상의 섭리’로 일컬어졌다.
고전적인 개발 대 보존의 대결 구도 안에서 끊임없이 인간의 몫만을 주장하고 또 끝내 차지해온 전통적인 자연파괴의 관행은 물론 그것대로 너무나 잘못된 것이다. 그런 행동과 결정의 누적적 여파를 지금 우리 모두가 겪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악습에서도 굳이 한가지 장점을 꼽자면 접근법과 논리가 단순하다는 점이다. 인간이 자연보다 중요하다는 지극히 단순한 명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최근 벌어지고 있는 자연파괴는 너무나 새로운 방식으로 뒤틀린, 변태적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응한답시고 오히려 숲의 벌채를 정당화하는 산림청의 30억그루 나무심기 정책은, 그것이 인간은 물론 숲을 위해서도 좋은 것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펼친다. 우리가 자르지 않고 ‘방치’하면 숲이 ‘쇠퇴’한다는 어불성설도 난무한다. 마치 사람의 ‘미다스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은 본원적으로 낙후되는 존재인 것처럼 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제 해양수산부도 이 광란의 행렬에 동참한다고 한다. 일반 갯벌보다 염습지가 탄소저장량이 높다는 이유로 어민 생계가 달린 곳을 제외한 모든 갯벌을 염습지로 인공적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멀쩡하게 잘 있는 아름다운 갯벌 무려 660㎢를 마음대로 다른 종류의 습지로 만들겠다는 이 충격적인 발상도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책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있다. 산림청이 나무의 영급을 조정한다며 숲을 파괴하는 것과 정확히 구조적으로 일치하는 사업이다. 자연이 고맙게도 해주고 있는 어떤 역할이 우리의 입맛에 조금 못 미친다며 그걸 다른 ‘자연’으로 마음대로 갈아치우겠다는, 전례가 없는 황당한 발상이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기후변화에 대한 무대응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의 해괴망측함이다.
이런 움직임을 우리 사회의 지표로 본다면 이는 심각한 우려 상황을 넘어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현대 문명의 한계를 한 방에 보여준 코로나19와 지구 전체의 존속 자체를 위협하는 기후위기라는 쌍두마차를 동시에 겪으면서도 이토록 철저하게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단 말인가? 그런 식으로 얕은 잔머리 굴려서 되는 게 아니라는, 근본적으로 자연을 함부로 대하는 습관을 고치지 않고선 미래란 없다는 그 단순 명백한 메시지가 그리도 이해하기 어려운가? 정부 부처 종사자들은 이렇게 완전히 역행하는 정책을 굳이 애써 고안할 바엔 차라리 고전적인 복지부동의 행태로 돌아가주기를 간곡히 바라는 바이다.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