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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홍은전 칼럼] 닭을 실은 트럭

등록 2021-05-24 04:59수정 2021-05-24 08:21

축산 동물은 신체적 극한에 이를 때까지 품종개변을 당한다. 1년에 60개의 알을 낳을 수 있는 닭이 그 4배를 낳도록 품종개변 당하고 짧은 생애 내내 골다공증에 걸려 다리가 부러진다. 젖소의 유방은 몸이 버티지 못할 정도로 많은 젖을 생산하도록 ‘장애화’되었고, 지속적인 강제 임신과 착유로 인해 젖소의 60%가 다리를 절고 35%가 유방염에 걸려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

| 홍은전 작가·인권 동물권 기록활동가

선천성 관절굽음증이라는 장애를 가진 수나우라 테일러는 미국 조지아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곳에선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닭들을 층층이 쌓아 싣고 지나가는 거대한 트럭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살아 있는 닭들이 너무 빽빽이 들어차 있어서 마치 트럭에 깃털이 달린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트럭에선 끔찍한 냄새가 났기 때문에 트럭이 지나갈 때마다 테일러는 숨을 참아야 했다. 똥오줌 위에서 녹초가 된 닭들이 죽어가고 있었고 어떤 새는 철장 사이로 떨어지기도 했다. 지독한 냄새를 참기 위해 숨을 참는 행동은 무언가 대단히 잘못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채는 어린 테일러만의 방식이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인 2006년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하게 된 테일러는 어린 시절 보았던 그 트럭을 그리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 들었다.

그는 트럭 사진을 찍기 위해 트럭의 최종 목적지인 닭 ‘가공’ 공장에 찾아갔다. 공장 바깥에 주차된 트럭으로 다가가 사진을 찍으려 하자 관계자들이 나타나 그를 쫓아냈다. 결국 테일러는 공장에서 일하는 지인에게 부탁해 사진 몇장을 얻었지만 그것 때문에 그 사람은 바로 다음날 해고되었다. (2006년 제정된 미국의 ‘동물기업테러법’은 동물권 운동가들의 활동을 테러로 규정하고 ‘동물기업’에 경제적 손실을 초래하는 행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동물들의 삶과 죽음은 철저히 가려져 있기 때문에, 일반에 공개된 공장식 축산 현장이나 도축장 모습은 대부분 몰래 찍은 것이다.)

테일러는 가로 3m, 세로 2.5m의 거대한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00마리가 넘는 닭들을 그리는 데 장장 1년이 걸렸다. 오물을 뒤집어쓴 채 힘없이 주저앉은 닭의 얼굴과 듬성듬성 빠진 깃털, 그들을 가둔 견고한 철장을 그렸던 그 시간 동안 테일러는 동물들이 이 세계에서 얼마나 거대한 규모로 살해되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깨닫는다. 그것은 닭들이 사실상 모두 자신처럼 장애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매년 전세계에서 500억마리 이상의 닭들이 도살된다. 그는 500억이라는 신화적 숫자를 채우고 있는 이 구체적 존재들을 하나하나 그려낸 후 <짐을 끄는 짐승들>이라는 책까지 쓰게 되었다.

테일러는 장애학의 렌즈를 통해 동물 문제를 바라본다. 동물을 ‘음식’이 아니라 ‘억압받는 자’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정확하게 이름 붙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사육되는 닭과 오리가 부리를 절단당하고 돼지가 꼬리와 성기를 잘린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테일러가 이것을 ‘인간이 동물에게 고의로 장애를 입히는 행위’(장애화)라고 표현했을 때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인간의 손이나 발, 입과 코처럼 중요한 감각기관이 마취도 없이 절단되는 일을 연상하고서야 동물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얼마나 잔인하고 불의한 것인지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그들이 태어날 때부터 갖는 장애, 그러니까 품종개량, 아니, 품종개변에 관한 내용이었다.

축산 동물은 신체적 극한에 이를 때까지 품종개변을 당한다. 1년에 60개의 알을 낳을 수 있는 닭이 그 4배를 낳도록 품종개변 당하고 짧은 생애 내내 골다공증에 걸려 다리가 부러진다. 젖소의 유방은 몸이 버티지 못할 정도로 많은 젖을 생산하도록 ‘장애화’되었고, 지속적인 강제 임신과 착유로 인해 젖소의 60%가 다리를 절고 35%가 유방염에 걸려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 닭은 자신의 거대한 ‘가슴살’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주저앉고 돼지의 다리는 비대해진 제 체중을 지탱하기에는 너무 약하다. 인간들이 품종개량이라고 부르는 이것이 20세기 전반의 야만을 대표하는 우생학의 한 형태라는 것은 살면서 내가 알게 된 가장 무시무시한 진실이다.

장애인을 공동체의 짐으로 간주하여 가스실로 몰아넣고 단종을 시행하던 그 과학은 여전히 건재한 정도가 아니라 거대한 산업이 되었고 그 위에서 풍요로운 문명과 인권이 꽃피었다. 어떤 인간도 짐승처럼 살게 해서는 안 된다며 떠나온 그 자리에 인간은 짐승들을 남겨두었다. 그리고 그들에겐 역사상 유례없는 학살이 자행되었다. 거대한 학살보다 끔찍한 것은 거대한 출생이다.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이 불의와 폭력이 그들의 숫자만큼 태어난다. 인간이란 무엇이고 인권이란 무엇일까. 너무나 당연해서 한번도 묻지 않았던 질문이 시작되었다. 나의 동물권 운동은 내가 믿고 추구했던 한 세상이 무너지면서 시작되었다. 닭과 소, 개와 돼지를 실은 트럭과 함께 네발로 나를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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