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마천루 꼭대기의 위험한 노동자들

등록 2021-05-25 15:55수정 2021-05-26 02:37

[유레카]

‘마천루 꼭대기의 점심’(Lunch Atop a Skyscraper)은 아찔한 사진이다. 1932년 미국 뉴욕의 초고층 건물 록펠러센터 건설 당시 지상에서 256m 높이에 있는 한 가닥 철제 빔에 걸터앉아 점심식사를 하는 노동자 11명의 초상이 담겨 있다. 다리가 후들거려 단 몇 초도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고공의 좁디좁은 공간에서 노동자들은 도시락을 먹으며 담소하고 느긋하게 담배도 나눠 피운다.

이 사진은 록펠러센터 건축을 홍보하기 위해 연출된 것이지만, 등장인물들은 실제 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의 신원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부분 대공황 시기를 힘겹게 건너야 했던 이민 노동자들로 추정된다.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일군 담대한 개척정신을 상징하는 영웅적 이미지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세상을 변화시킨 100대 사진’에도 선정됐다.

그런데 사진 속 노동자들은 아무런 보호장구도 착용하지 않고 있다. 안전모도 구명줄도 없다. 당시 찍은 작업 장면 역시 별다른 보호장치 없이 일하는 아찔한 모습은 다를 바 없다.

록펠러센터 건설 도중 3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슷한 시기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공사에서는 5명의 공식 사망자가 기록됐다. 크라이슬러 빌딩은 1명의 희생자도 내지 않고 지어졌다. 1889년 완공된 프랑스 파리 에펠탑도 안전 난간과 보호막 등이 설치돼 공사 중 희생자가 1명에 그쳤다. 1911년 완공된 초대형 유람선 타이태닉호도 건조 과정에서는 8명이 숨졌다는 기록이 있다.

그로부터 100년가량의 세월이 지났다. 2017년 완공된 서울 롯데월드타워 건축 과정에서 4명의 노동자가 희생됐다. 같은 해 우리나라 건설 노동자 10만명당 사고 사망자 수는 25.45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8.29명)의 세 배다. 2020년 건설업 산재 사망자는 458명에 이른다. 삼성, 대우, 현대 등 조선소에서는 최근 5년 동안 78명이 희생됐다. 지난해 전체 산업 현장에서 사고로 882명의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올해도 건설 현장에서, 공장에서, 항만에서, 조선소에서 참사는 이어지고 있다. 저 허공의 철제 빔 위에서 무방비로 일하는 듯한 ‘위험 노동’의 일상화가 사진보다 선명한 현실이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사설] 채 상병 수사 외압도 갈수록 뚜렷, 더 이상 ‘방탄’ 안 된다 1.

[사설] 채 상병 수사 외압도 갈수록 뚜렷, 더 이상 ‘방탄’ 안 된다

‘대통령 놀이’의 막장 보여준 검찰 인사 [아침햇발] 2.

‘대통령 놀이’의 막장 보여준 검찰 인사 [아침햇발]

[사설] 의대 증원, 이제 소송전 멈추고 대화로 매듭지어야 3.

[사설] 의대 증원, 이제 소송전 멈추고 대화로 매듭지어야

[사설] 김건희 여사 활동 재개, 특별감찰관·부속실 설치 약속은 어디 갔나 4.

[사설] 김건희 여사 활동 재개, 특별감찰관·부속실 설치 약속은 어디 갔나

채 해병 사건, 반쯤 열린 진실의 창 [세상읽기] 5.

채 해병 사건, 반쯤 열린 진실의 창 [세상읽기]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