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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커피 한잔의 연대

등록 2021-05-31 04:59수정 2021-05-31 09:40

김여사의 어쩌다 마을
스무살 청년이 ‘김여사의 어쩌다 마을’을 먼저 읽고 그리다. 장태희
스무살 청년이 ‘김여사의 어쩌다 마을’을 먼저 읽고 그리다. 장태희

얼마 전 눈길을 끈 외신 뉴스 하나. “미얀마 시민들 사이에서 한국의 존재감이 높아지고 있다”는 기사였다. 미얀마 주재 일본인이 현지인 대상 설문조사를 했는데, 쿠데타 이후 인상이 좋아진 나라로 10명 중 9명이 한국을 꼽았다는 것이다.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비극이 1980년 광주의 기억과 겹치다 보니 남다른 공감과 안타까움이 가닿은 결과인 듯하다.

내가 사는 파주의 시민들도 미얀마 상황에 관심이 많다. 파주에는 이주노동자가 많다. 거리에서 시장에서 종종 마주치는 ‘이웃’들이다. 친밀하지는 않아도 유대감이 생겨서일까. 미얀마 민중의 항쟁을 지지하는 촛불 모임을 비롯해서 ‘뭐라도 하자’는 움직임이 일찍부터 꿈틀댔다.

그 중심에 이 바우로 성공회 신부가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필리핀 등 국내외에서 이주노동자 지원활동을 해온 그가 파주에서 이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013년, 이주노동자 센터를 열고 상담, 교육, 공동체 지원활동을 해왔다. 선입견과 달리 고국을 떠난 이주노동자들은 대개 젊고 의욕적이며 성취욕이 넘친다. 몇년 전 한 약사단체가 이주노동자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었는데, 약사들이 무척 좋아했다. 이주노동자들이 젊고 활기차서 놀랐고, 일하면서도 신이 났단다. 이주노동자 지원에서 가장 큰 문제는 통역이다. 최근에는 캄보디아 노동자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캄보디아 출신으로 한국어가 능숙한 결혼 이주여성이 통역을 하며 센터에 상주하고 있는 덕분이다. 지자체 지원사업이지만 임금을 열 달만 지급한다. 지원들이 이렇게 대부분 한정적이라 어려움이 많다.

스리랑카, 캄보디아, 타이(태국) 출신들이 이주노동자 센터를 자주 찾는 데 반해 미얀마 출신 이주노동자들과는 별다른 유대가 없었다. 수도 적지만 안정된 통역자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미얀마 민주항쟁을 계기로 3월 초에 작은 모임이 만들어졌다. 미얀마 출신으로 한국에 유학 온 성공회 신부에게 현지 상황을 들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는 미얀마에서도 카친족이라는 소수민족 출신이라고 한다. 미얀마는 불교의 나라답게 인구의 70%가 불교 신자지만 소수민족 사이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제법 있다고 했다. 모임 이후 미얀마를 걱정하는 마음들이 모여 매주 목요일 촛불을 들기 시작했다.

얼마 전 미얀마 신부로부터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성공회가 운영하던 고아원에 아이들이 폭증한다는 소식이었다. 군부의 탄압으로 부모가 죽거나, 외국에 일하러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 등 여러 이유로 부모 잃은 아이들이 늘면서 고아원 아이들이 스무명에서 마흔명으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후원금도 끊기고 운영이 어렵던 차에 아이들이 늘어나니 어려움이 크다는 전언이었다.

소식을 들은 몇몇 파주시민들이 궁리를 했다. 매주 목요일을 ‘미얀마 기억의 날’로 삼아, 3천원짜리 커피 한잔 값을 아껴보기로 한 것. 한달이면 1만2천원. 미얀마 아이 한명이 한달 동안 먹을 수 있는 돈이란다. 소식을 접한 많은 이들이 자동이체로 마음을 보태고 있다. 성공회가 운영하던 고아원이지만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지금은 스님들이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아이들 살리는 데 종교 차이는 중요하지 않죠.” 이 신부의 말이다. 비극 앞에서 구원이라는 종교 본연의 사명이 빛을 발한다.

평소 이 신부는 해외 원조에 대해 조심스럽게 생각해왔다고 한다. “필리핀에서 일할 때, 원조가 들어온 후 지역공동체가 깨지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자칫 우리의 선한 의지가 미얀마인들의 자립심을 약하게 하고 공동체의 분란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위중한 상황이에요. 설령 우리의 후원이 자기만족적 시혜에 그칠지라도 뭐라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아프리카 구호 활동으로 유명한 배우 김혜자씨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프리카에 가면 깨끗이 씻겨져 오는 느낌이 들어요. 사실 봉사라는 말도 부끄러워요. 그건 봉사가 아니라 나를 구원하러 가는 거니까요.” 누군가를 돕는다는 건 ‘내 안의 선의’를 확인하는 자기만족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 단발성 봉사나 지원으로 구조적인 불평등과 빈곤이 해결될 수도 없다. 그렇게 구조적 한계를 따질 때 지금 굶주리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 한명 더 먹고 입게 하는 데엔 뭐라도 하나 보탤 수 있으니까 일단 저는 한명 더 먹이고 입힐래요.” 김혜자씨의 말이다. 깊은 고민보다 당장의 행동이 더 절실한 때가 있다. 눈 밝혀 주변을 둘러보면 미얀마를 돕는 모임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지금 당신을 기다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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