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 진열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회고록 <조국의 시간: 아픔과 진실 말하지 못한 생각> 연합뉴스
[편집국에서] 신승근ㅣ정치에디터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조국의 시간> 출간을 알리는 페이스북 글에서 “오랜 성찰과 자숙의 시간을 보내며 조심스럽게 책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동안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털어놓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고 적었다. 그런데 <조국의 시간>을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은 가볍지 못하다.
적잖은 지인들이 “그는, 좀 조용하게 있으면 안 되냐”고 묻는다. 하지만 그는 <조국의 시간>을 “‘주장’ 이전에 ‘기록’”이라며 “2019년 하반기 이후 언론이 ‘기계적 균형’조차 지키지 않고 검찰의 일방적 주장과 미확인 혐의를 무차별적으로 보도하였기에, 늦게나마 책으로 최소한 자기방어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녀 입시 문제 등에 대해 여러차례 정무적·도의적 사과를 했지만, 억울할 것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조국 일가’에 들이댄 ‘칼날’은 분명 도를 넘었다. 아내는 구속됐고, 딸은 의사 면허를 취소당할지도 모른다. “정무적 감각이 정말 없다”고 조 전 장관을 비난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는 그저 ‘조국의 일을 자신의 입장에서 충실히 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정치의 영역에선 좀 다른 문제다. 조국 사태는 ‘늪’이나 ‘수렁’ 같은 것일 수 있다. 국민의힘에 ‘박근혜 탄핵’이 쉬 건널 수 없는 강이라면 더불어민주당에는 ‘조국 사태’가 그와 흡사하다. 당장 <조국의 시간> 출간을 두고 민주당 안팎에선 ‘친조국’ ‘반조국’ 논쟁이 일고 있다. 민주당 열성 지지자들에게 그는 ‘아픈 손가락’이다. 윤석열 전 총장의 ‘확증편향’과 먼지떨이 수사에 조국 일가가 멸문지화를 당했다고 확신한다. 딱히 틀린 인식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마음껏 부린’ 뒤, 그가 계속 ‘우리 편’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검찰총장에 임명하고, 살아 있는 권력에도 칼을 대라고 주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이번에 꼭 검찰총장을 하고 싶다”는 윤 전 총장의 열망을 문 대통령에게 전한 여권 인사도 있을 것이다. 조 전 장관 자신의 허물로 허물어진 측면도 있다.
조국 사태로 드러난 집권세력의 불공정과 부도덕이 4·7 재보선 참패의 원인이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조 전 장관 말처럼 “검-언-정 카르텔의 합작 공격으로 불리하게 형성된 여론”일 수도 있지만, 조국 사태를 ‘내로남불’, ‘거짓과 위선’의 상징처럼 받아들이는 국민도 있다. 민주당 전략기획위원회가 연령별 심층면접을 통해 작성한 내부보고서도 ‘조국 사태 등 여권 인사의 도덕성 논란’을 재보선 참패의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국민의힘엔 ‘이준석 돌풍’이 불고 있다. ‘36살 0선, 이준석’ 당대표가 현실화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사라진 뒤 ‘도로 영남당’ ‘도로 태극기당’ ‘도로 수구정당’이 될 것이라는 민주당의 희망 섞인 기대는 사라졌다. 와이에스(YS), 디제이(DJ)도 못 했던 일을 1985년생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이룬다면 국민은 국민의힘을 ‘김종인에게 의탁해 연명해온’ 지금까지와는 분명 다르게 인식할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4·7 재보선 참패 뒤 조국 사태 반성론을 제기한 초선들의 작은 외침조차 내부 반발에 가로막혀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조국의 시간>에 공감하는 이도, 군색한 변명처럼 받아들이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낙연·정세균 전 총리,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등은 조국 옹호를 지지층 결집의 발판으로 삼고 싶은 유혹을 쉬 떨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친조국’ ‘반조국’ 논쟁을 부른다면 수렁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2일 “조국 전 장관의 법률적 문제와는 별개로 자녀 입시 관련 문제는 우리 스스로 돌이켜보고 반성해야 할 문제”라며 “국민과 청년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점을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더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조국 일가’의 신원은 조국 전 장관에게 맡기면 된다. “이제 저를 잊고 저를 밟고 전진하십시오”라는 조국 전 장관의 글이 아니라도, 이제 민주당이 ‘조국의 강’을 건너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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