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이우진의 햇빛] 대기는 강물처럼

등록 2021-06-13 13:05수정 2021-06-14 02:37

이우진 ㅣ 차세대수치예보모델개발사업단장

산골 외진 곳에서 시작한 물줄기는 산야와 도심을 지나 유유히 바다로 흘러간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수평선을 사이에 두고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곳에서, 물은 수증기가 되어 대기의 물길을 따라 계속 흐른다. 바람을 타고 어디론가 날아다니다 비나 눈이 되어 또 다른 강물로 환생한다. 땅과 하늘의 물길을 합쳐 보아야 온전한 강의 지도가 드러난다.

대기의 물길은 보이지는 않지만, 생활 속에서 우리는 이 흐름의 존재를 감각적으로 느낀다. 하늘에 뿌연 연기라도 낀 듯 시야가 답답해지고, 햇빛을 피해 그늘에 들어가도 찌뿌둥하고, 바람이 불어와도 시원한 느낌이 둔해지면 어디엔가 이 물길이 형성되는 전조다. 그러다가 남풍이 강해지고 낮은 구름이 들어차 하늘이 어두워지고, 먼 곳에서 빗방울이 세차게 맨땅을 두드리며 뿜어 올린 진한 흙냄새가 한 움큼 느껴지면 이 물길이 밀려오고 있음을 직감한다.

살아가는 데는 물과 햇빛이 모두 필요한데, 날씨는 매번 두 장의 카드 중에서 하나만을 골라 가게 한다. 비가 오는 날이면 구름이 해를 가리고, 맑은 날에는 해가 쨍쨍한 대신 하늘에서 물이 떨어지지 않는다. 봄철에는 온대 저기압과 이동성 고기압이 교대로 한반도 주변을 지나가면서, 한번은 비를 주고 다음에는 햇빛을 주어 시간이 지나면 이 땅에 물과 햇빛이 고루 채워진다. 하지만 장마철에는 흐리거나 비 오는 날이 계속되고, 장마가 끝나면 북태평양 고기압이 우리나라를 덮어 햇빛이 쨍쨍하고 무더운 날이 한동안 이어진다.

고대 문명은 물과 햇빛이 풍족한 곳에서 시작했다. 이집트 문명은 뜨거운 태양열이 온종일 내리쬐는 아열대 사막 기후에서 태동했다. 그들은 비구름 대신 햇빛을 선택했다. 그늘 하나 없는 황량한 모래벌판과 뙤약볕 아래 검게 그을린 고대 이집트인을 생각하면, 이곳에서 과연 사람이 살 수 있었을까 의문이 생기지만, 나일강을 떠올리면 궁금증이 풀린다. 나일강의 수원은 남쪽으로 수천킬로미터를 내려가 연중 소나기가 오는 열대 우림까지 뻗쳐 있다. 게다가 여름이 되면 태양의 고도가 높아지고 계절풍을 따라 비구름대가 북상하여, 에티오피아 고원에 쏟아지는 많은 비가 강줄기를 따라 흘러내린다. 나일강 상류에서는 하늘로부터 햇빛 대신 물을 받고 하류에서는 물 대신 햇빛을 받았지만, 나일강이 상류의 물을 하류로 전해주어 삼각주에 둥지를 튼 이집트인들은 둘 다 챙길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계절풍이 변덕을 부리면서 여름이면 으레 찾아왔던 비구름대가 나일강의 수원지를 벗어나자 이집트 왕국도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 강물의 수위가 낮아지고 가뭄이 길어지며 사회불안과 왕권의 쇠락을 부추겼다는 설명이 설득력을 갖는다. 태양신의 광채에 빛나는 피라미드와 나일강은 영원히 그 자리를 지켰지만, 왕들의 계곡을 채워줄 대기의 물길은 그들의 염원과는 상관없이 움직였던 것이다. 강이 정해진 코스대로 역사와 문화를 따라 걷는 순례자의 길을 닦아주었다면, 대기의 물길은 바람 따라 왔다가 지나간 흔적조차 지워진 나그네의 길을 짐작게 할 뿐이다.

날씨가 매번 무작위로 섞어낸 후 꺼내 든 두 장의 카드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헤아리기는 어렵다. 어느 해에는 대기의 물길이 한반도를 비켜 가 찔끔 소나기만 내리고 폭염이 기승하는 마른장마가 오고, 다른 해에는 대양의 뜨거운 수증기의 물길이 바나나 모양으로 한반도를 지나면서 집중호우가 반복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자연이 우리에게 비호의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이해관계에 따라 자연의 표정이 달리 보일 뿐이다. 우리는 큰비가 오면 강이나 하천이 넘쳐흘러 저지대가 침수될까 봐 재해를 걱정하지만, 이집트인들은 나일강이 범람하기를 기다리며 풍년에 대한 감사의 축제를 벌이지 않았던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도사·목사와 내란 [한승훈 칼럼] 1.

도사·목사와 내란 [한승훈 칼럼]

가스 말고, ‘공공풍력’ 하자 [한겨레 프리즘] 2.

가스 말고, ‘공공풍력’ 하자 [한겨레 프리즘]

‘윤석열 이후’ 계산하는 중국 [특파원 칼럼] 3.

‘윤석열 이후’ 계산하는 중국 [특파원 칼럼]

분노한 2030 남성에게 필요한 것 [슬기로운 기자생활] 4.

분노한 2030 남성에게 필요한 것 [슬기로운 기자생활]

법원 방화까지 시도한 10대 구속, 누구의 책임인가 [사설] 5.

법원 방화까지 시도한 10대 구속, 누구의 책임인가 [사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