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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손가락 찾기, 받아주는 사람 잘못이다

등록 2021-06-14 16:25수정 2021-06-15 02:08

[편집국에서]  김남일 ㅣ 디지털콘텐츠부장

받아주니 끝이 없다. 이런 경우에 딱 맞는 말이다. 메갈리아가 만들었다는 원조 손가락 이미지를 다시 찾아봤다. 성인 여성 손이라고 가정할 때 비하 대상이 됐다는 크기는 대략 2㎝ 안팎으로 추정된다. 생물학적으로나 의학적으로 성인 남성에게는 불가능한 신생아 수준 사이즈다. 비하라는 게 원래 실재보다 얕잡아 낮춰 보는 것이니 그렇다고 치자. 아무리 그래도 의도를 모르고 보면 비하 대상을 떠올리기 힘든 수준이다. 재현에 실패한, 그저 자기실현적 이미지라는 얘기다. 그와 유사한 손가락 이미지를 볼 때마다 갓 태어난 자신의 신체 일부분 기억이 떠오른다면, 그건 손가락의 기적이요 알츠하이머 치료의 길이다.

게다가 비하라니. 전국 명승지에 남근석이라 이름 붙은 거대한 기암괴석이 즐비한 한국 사회에서 가당키나 한 말인가. 21세기 대명천지 음기를 누르겠다며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높이 7m짜리 위풍당당한 비석이 세워졌다. 남근석 논란에 다시 뽑아낸 게 불과 12년 전이다.

기업, 지방자치단체, 국가·공공기관 등이 만든 포스터·전시물에 메갈리아 손가락 이미지가 심어졌다는 억지 주장이 쏟아지기 시작한 지 두달째다. 무슨 매미도 아니고 수년간 잠복해 있다가 2021년 5~6월에 맞춰 각성한 듯하다.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하는 이들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엄지와 검지 사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 크기에 대한 인정투쟁을 벌이겠다니 굳이 막을 수도 없는 일이다. 인정투쟁이라면 전교 1등인 슬기로운 의료계가 일부 남성의 양자역학적 자의식을 치료하겠다며 계산기를 두드린다면 신경외과일까 비뇨기과일까. 2㎝ 작은 틈에도 멘탈과 멘파워의 갈림길이 존재할 수 있다니 삼라만상의 신비다.

받아주면 끝이 없는 법이다. 그래서 의심하게 되는 것은 이런 억지를 곧이곧대로 접수하거나 말이라도 들어보자는 쪽이다. 국방부를 보자. 멘탈, 그러니까 군인정신과 그것의 집합적 표현인 군기를 항상 강조하는 조직이다. 정작 매미들이 한번 울자 불과 하루 만에 멘파워의 길을 택했다. “좀 억울한 점도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서 어떤 오해, 논란을 야기한 것에 대해서는 좀 문제가 있다. 앞으로 홍보콘텐츠 제작 시 유의하겠다.”

5천년 민족사, 선열들의 위국헌신, 호국안보, 상무정신을 기념한다는 전쟁기념관은 어떤가. 국방부가 저리 나왔으니 길 건너 맞은편에 자리한 전쟁기념관은 답안지가 이미 나온 셈이다. “다소 억측이 있으나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 게시물 등을 세심하게 관리하지 못한 점은 분명 임직원 모두의 책임이다. 불편을 드린 점 사과드리며 같은 사안이 재발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도대체 어떤 의사결정 과정을 거쳤길래 저런 답변이 나오는지 궁금하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육사, 장관 직속 부승찬 대변인은 공사 출신이다. 메갈리아 손가락 이미지가 세상에 나오기 2년 전 설치한 전시물 철거를 결정하며 “임직원 모두의 책임”이라는 시간여행자의 사과문을 내놓은 전쟁기념관 이상철 관장은 육사, 김영철 사무총장은 해사 출신이다. 사관학교에는 항장불살이라는 3군 공통 필수과목이라도 있는 것인가.

현실 세계에서 그 누구의 낭심 한번 아프게 할 수 없는 손가락 이미지 앞에 국방부가 이틀을 못 버티고 백기투항하는 동안 군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국방부 대변인은 공군 부사관이 성추행 피해 신고 뒤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보도가 나간 다음날 이런 말을 반복했다. “수사를 좀 더 해봐야 한다. 좀 결과를 지켜봐달라.” “조금만 지켜봐주면 설명할 수 있도록 하겠다.” 누군가 책임져야 하는 일에는 이렇게 신중하다. 국방부 장관 공식 사과는 8일 뒤에야 나왔다.

손가락 찾기를 통해 기업과 기관을 무릎 꿇리는 이들이 노릴 다음 타깃이 어디가 됐든 이번에는 오냐오냐 받아주지 않았으면 한다. 국가기관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제는 그걸 받아주는 사람에게 한국 사회를 퇴행시킨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 이런 부류 억지는 공론장에서 재치 대결로 승부를 가를 주제도 아니다. 자꾸 받아주면 끝이 없다.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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