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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장애인 탈시설’ 로드맵 수립, 반갑지만 갈 길 멀다

등록 2021-08-02 19:03수정 2021-08-02 19:16

장애계 숙원, 국가 차원 목표 설정 성과
20년 장기계획, 예산 등 일관성이 관건
‘장애인 이웃’ 환대하는 인식 변화 절실
양성일 보건복지부 1차관이 2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과 ‘장애인 권리보장법’ 제정 추진 계획 등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양성일 보건복지부 1차관이 2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과 ‘장애인 권리보장법’ 제정 추진 계획 등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무총리 소속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가 2일 ‘장애인 탈시설 로드맵’을 발표했다. 집단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이 앞으로 20년 동안 단계적으로 지역사회로 나와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방안을 담고 있다. 장애인 탈시설은 인권단체들이 오랜 시간 줄기차게 요구해온 숙원 과제다. 또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UNCRPD)에 명시된 장애인의 권리이며, 국제적으로도 뚜렷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공약으로 내걸었고, 당선 뒤 ‘100대 국정과제’로 선정하기도 했다. 지체된 면이 없지 않으나, 임기 내에 구체적인 로드맵이 나온 건 크게 환영할 일이다.

정부는 오는 2041년 시설 거주 장애인의 지역사회 거주 전환 마무리를 목표로 2025년부터 해마다 750여명의 탈시설을 지원할 계획이다. 장애인이 지역사회로 나와 살려면 무엇보다 살 집이 있어야 한다. 정부는 내년부터 통합 공공임대주택 전체 공급량의 5%를 장애인에게 우선 공급한다. 장애인의 자립 생활에는 그밖에도 필요한 게 많다. 정부는 장애인들과 함께 사는 전담 직원이나 방문 서비스를 통해 일상을 지원하기로 했다. 갑작스러운 자립생활에 따른 충격을 완화할 수 있도록 중간 단계 거주 공간인 ‘체험 홈’을 제공하고, 해마다 자립지원 조사를 벌여 지원 대상을 발굴하겠다는 세심한 계획들도 눈에 띈다.

그러나 정부의 로드맵이 실현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다. 탈시설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거나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는 현실부터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보다 장애인 당사자나 가족 가운데서도 탈시설에 부정적인 이들이 적지 않다. 지난 26일 ‘전국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가 세종시 보건복지부 앞에서 상복을 입고 탈시설 정책 반대 집회를 연 것이 단적인 예다. 이에 앞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시설 퇴소는 우리에게 사형선고다’라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시설 거주 장애인들의 탈시설 희망 비율은 아직 33.5%에 그친다.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들의 이런 태도는 장애에 따른 어려움과 고통을 아무런 사회적 지원 없이 감당해야 했던 경험과 깊이 닿아 있다. 오죽하면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곳에서 최소한의 사생활의 자유도 보장받지 못한 채 툭하면 가혹행위 등 인권침해가 벌어지는 시설에 기대려 하겠는가. 이들의 눈에 정부의 탈시설 로드맵이 미덥지 않을 수 있다. 로드맵 발표를 앞두고 장애인권단체들이 컨테이너 고공농성을 벌인 데서 보듯, 장애인 권리운동의 역사는 매순간 정부의 부정적인 태도에 맞서온 과정이었다.

이번에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계획을 함께 밝힌 것은 로드맵의 실행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장애인들의 신뢰를 얻는 데 도움이 될 거라 본다. 재정당국이 장애인 탈시설에 따르는 예산에 손댈 수 없게 하는 장치를 두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장애인 인권 신장에 대한 정부의 일관된 태도가 있을 때라야 장애인을 이웃으로 환대하는 지역사회의 인식 변화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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