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8월14일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로 겪었던 피해를 국내 거주 피해자 가운데 최초로 증언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장철규 기자
”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입니다.(…) 그동안 말하고 싶어도 용기가 없어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언젠가는 밝혀져야 할 역사적 사실이기에 털어놓기로 했습니다.”
1991년 8월14일 67살 김학순 할머니가 눈시울을 적시며 말문을 열었다. 17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지 50년 만에, “살아 있는 증거”인 그가 강고한 침묵의 벽을 부쉈다. “위안부로 고통받았던 내가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 있는 데 일본은 위안부를 끌어간 사실이 없다고 하고 우리 정부는 모르겠다 하니 말이나 됩니까.”
김 할머니의 용기는 세상을 깨웠고, 세상을 바꿨다. 그는 1997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거듭 증언에 나서며 성폭력 피해자의 ‘순결’을 따지며 침묵을 강요하던 가부장제의 굴레를 넘어섰고, 일본 국가와 군이 침략전쟁에서 여성들을 성노예로 삼았던 만행을 세상에 드러내고 책임을 물었다. 그는 아시아 각국의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이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1993년 8월 일본 정부는 “일본군의 관여 아래 여성들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혔다”고 인정한 ‘고노 담화’를 발표했다. 2007년 미국 하원에서는 일본 정부의 공식적이고 분명한 인정과 사과, 역사적 책임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그의 증언에서 시작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운동은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전시하 여성 성폭력이 다시는 벌어져서는 안 된다는 인권과 평화 운동의 거대한 물줄기를 만들어냈다.
3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반역사적 퇴행에 직면해 있다. 일본 정부는 피해자들이 요구해온 공식 사죄와 배상을 거부하고 교과서에서 위안부 관련 내용을 지우고 있다. “역사의 교훈으로 직시하고 교육을 통해 오래도록 기억하겠다”고 했던 고노 담화마저 흔들고 있다. 2015년 박근혜 정부와 아베 정부의 ‘12·28 합의’는 10억엔으로 모든 문제가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된다”며 망각을 강요하려 했다. 한국 사회가 이를 거부하고 재검토하자, 일본은 한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라고 강변한다.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양국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을 공격하는 우익들의 역사 부정과 백래시(반발성 공격)가 거세졌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해결을 위한 운동을 상징하는 정의기억연대를 이끌었던 윤미향 의원의 회계 부정 논란에 대한 여론의 실망도 적지 않다.
생존 ‘위안부’ 피해자는 이제 14명, 평균 92살의 고령이다. 다시, 김학순 할머니의 30년 전 용기를 되새기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배상, 피해자들의 존엄 회복, 그리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벌어지지 않도록 미래세대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고 온전히 기억하겠다는 원칙을 지켜가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해결 방안의 공감대를 마련하고, 한일 시민사회의 연대 위에서 계속 전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