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가보훈처에 ‘독립전쟁 영웅’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을 알리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항일 독립전쟁사에 한 획을 그은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15일 국내로 봉환됐다. 1943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서 서거한 지 78년 만이다. 늦었지만 홍 장군의 유해가 고국 땅으로 돌아온 것은 의미가 크다. 그가 보여준 민족애와 불굴의 투쟁정신이 세계 선도국가로 도약 중인 자랑스러운 조국의 후손들에게 공동체에 대한 자긍심과 새로운 도전 의지를 북돋는 또 하나의 소중한 유산이 될 것이라 기대해 마지않는다.
홍 장군의 유해 봉환은 김영삼 정부 시절이던 1995년부터 추진됐지만, 현지 고려인 사회 여론과 카자흐스탄과 북한의 관계 등 여러 사정이 얽혀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 2019년 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이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에게 유해 봉환에 협조해줄 것을 공식 요청하면서 본궤도에 올랐다. 애초 유해는 봉오동·청산리 전투 100돌을 맞는 지난해 봉환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양국이 합의했던 토카예프 대통령의 방한이 늦춰지면서 일정이 연기됐다가 토카예프 대통령의 이번 국빈 방문에 맞춰 성사됐다.
1868년 평양의 가난한 평민 가정에서 태어난 홍 장군은 강원도 북부에서 포수로 활동하다 1895년 의병 활동에 뛰어들었고 1910년 국권 상실 뒤엔 연해주로 망명해 국경지대에서 수많은 유격전을 지휘했다. 1920년 봉오동 전투를 이끌며 일본군 157명을 사살하고 300여명에게 부상을 입히는 전과를 올렸고 이후 청산리 전투에도 참가해 승전에 기여했다. 1937년 소련 스탈린 정권의 한인 강제이주 정책으로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로 옮겨갔고 독-소 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현지 고려인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정신적 지주’로 추앙받아왔지만, 냉전 시기 국내에서는 우익 계열 독립운동 지도자들에게 밀려 업적에 합당한 조명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번 유해 봉환에 맞춰 국가보훈처는 온·오프라인 추모 행사를 연다. 보훈처 누리집에서 온라인 헌화·분양이 가능하고, 유해가 안장되는 대전현충원에서는 현충문 앞에 설치된 분향소에서 직접 참배도 할 수 있다. 홍 장군의 유해 봉환이 일제강점기 독립을 위해 목숨 걸고 헌신한 선열들의 뜻을 제대로 기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독립전쟁 영웅의 귀환이 코로나19의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는 국민에게 한줄기 희망의 빛이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