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한국형 구축함 강감찬함(4400톤). 해군 제공
해군 구축함 강감찬함에서 근무하던 병사가 선임병들한테 폭언, 폭행, 집단 괴롭힘 등을 당하다 지난 6월18일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한다. 시민단체인 군인권센터는 7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렇게 밝히고, 숨진 정아무개 일병이 피해 사실을 함장에게 신고했지만 피해자 보호 조처는커녕 가해자와 화해를 요구받는 등 ‘2차 가해’까지 있었다고 주장했다. 지난 5월과 8월 사망한 공군·해군 부사관 성폭력 사건에서 드러난 회유, 축소, 은폐, 초동수사 부실 같은 문제들이 이번에도 되풀이됐다. 충격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지난 2월 강감찬함에 배치된 정 일병은 휴가와 자가격리를 길게 다녀왔다는 이유로 지난 3월 선임병들로부터 폭언을 듣고, 집단 괴롭힘과 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그는 3월16일 함장에게 모바일 메신저를 이용해 폭행과 폭언 사실을 신고했지만 가해자·피해자 분리가 이뤄지지 않았다. 3월26일 밤 정 일병이 자해 시도를 하자 함장은 다음날 새벽 가해자를 불러 사과를 시켰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생활·업무공간이 제한된 함정의 특성을 감안할 때 함장은 즉시 피해자와 가해자를 하선시켜 분리한 뒤 치료와 수사를 받게 해야 했다.
군 복무 중 억울한 일을 당한 장병들은 “신고해도 소용없다”는 불신과 무기력에 사로잡혀 있다. 정 일병은 어렵게 용기를 내어 지휘관을 믿고 신고를 했지만, 방치됐고 결국 2차 가해를 겪었다. 피해자가 숨진 뒤 뒤늦게 가해자 수사가 시작됐다.
앞서 국방부는 지난 6일 정례브리핑에서 인기 드라마 <D.P.>에서 묘사된 군내 가혹행위와 관련한 질문에 대해 “현재는 (병사들의) 일과 이후 휴대전화 사용 등으로 악성 사고가 은폐될 수 없는 병영 환경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불과 하루 만에 정 일병의 비극적 사건이 공개되면서 국방부는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지난 5월 공군 부사관의 성폭력 사망 사건으로 국민적 공분이 들끓고 있었는데도 당시 정 일병에 대한 집단 괴롭힘 사건을 대하는 군 당국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군인권센터는 “매번 군에서 사람이 죽을 때마다 어떻게든 사건을 무마, 은폐하여 책임질 사람을 줄여보려는 군의 특성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제 국방부의 ‘셀프 개혁’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군대를 바꾸려면 “뭐라도 해야 한다”는 드라마 <D.P.>의 대사처럼, 억울한 죽음을 막기 위해 우리 사회가 뭐라도 해야 한다. 병영문화 혁신과 군사법원, 군 수사기관 등 군 사법제도 개혁 같은 대책은 이미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