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상관의 성추행과 군의 2차 가해로 극심한 고통을 겪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이 중사 사건에 대해 국민들의 분노가 들끓자 군은 철저한 수사와 재발 방지를 거듭 다짐했다. 하지만 바로 그 무렵 또다른 공군 ㄱ하사가 성추행을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했는데도 군이 이를 유족들에게 숨기고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이 중사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고 이성용 공군참모총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지만, 일선 부대에서는 전혀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군은 진상 규명보다는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했고 그 결과 성폭력 피해자와 유족들은 절망의 벽 앞에서 고통을 겪고 있었다.
15일 군인권센터가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을 보면, 공군 8전투비행단 ㄱ하사가 지난 5월11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자, 군은 상관인 ㄴ준위의 행적을 조사했다. 군인권센터와 유족들이 확인한 수사 기록에 따르면, ㄴ준위는 군 수사에서 두차례 강제추행한 사실을 자백했다. 또 차에서 20분간 피해자를 만난 상황이 담긴 블랙박스 기록을 삭제했고 ㄱ하사가 숨진 당일 출근 시간 30분 전부터 23차례 전화를 걸고 피해자의 숙소에 무단 침입한 사실도 확인됐다. 그러나 군은 6월 초 ㄱ하사의 사인을 ‘스트레스성 자살’로 결론 내리고 수사를 종결했다. 이렇게 묻힐 뻔했던 ㄱ하사 사망 사건은 유족이 재수사를 요청하고 수사 기록 정보 공개를 청구하면서 드러났다. 군은 8월3일에야 뒤늦게 ㄴ준위를 ‘강제추행’ 혐의로 입건했고 10월14일 기소했다. 이 중사 사건에서 군이 보여준 부실 수사와 축소·은폐 시도를 떠오르게 한다.
군인권센터와 유족들은 공군이 사건 초기부터 강제추행 사실을 알고도 사건을 축소·은폐해오다가, 군 성폭력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멀어질 때쯤 강제추행으로 기소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공군은 강제추행에 대해 처음부터 수사를 진행했고 은폐를 하려 한 게 아니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여러 정황을 볼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 군은 ㄱ하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 가해자에 대한 철저한 수사는 물론 축소·은폐 의혹에 대해서도 한 점 남김없이 낱낱이 밝혀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