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 비리 혐의로 기소된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신한은행 채용 비리 사건으로 기소된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지난 22일 무죄 판결을 받았다. 조 회장은 2015~16년 신한은행장 재직 때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 임원·지인 등의 자녀를 부정 채용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됐는데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데 이어 항소심에선 아예 무죄가 나온 것이다. 재판부는 부정행위를 인정하면서도 법리적 이유를 들어 무죄 판단을 내렸다. 법이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면 우리 사회의 공정과 정의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등법원 형사6-3부는 검찰이 ‘부정 합격자’라고 판단한 53명에 대해 “대부분 청탁 대상이거나 은행 임직원과 연고 관계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상위권대 출신에 어학 점수, 자격증 등을 갖추고 있어 ‘부정 통과자’라 일률적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지원자들 중 일부는 신한은행 내부의 정당한 채용 과정을 거쳐 합격했을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채용에 대한 ‘부정한 청탁’이 있었더라도 실력으로 합격했을 가능성이 있다면 ‘부정 채용’이 아니라는 셈인데, 국민 대부분의 상식과 충돌하는 법리다. 육상경기에서 ‘부정 출발’을 했더라도 달리기 실력이 인정되면 메달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이렇다 할 ‘빽’이 없는 대다수 취업준비생들이 이번 법원 판결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겠는가. 그런 자녀를 둔 부모의 심정은 어떠했겠는가. 채용 비리는 세상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려 하는 많은 청년들에게 좌절감과 배신감을 안겨주는 중대 범죄다.
법원은 입법의 미비에 책임을 돌렸다. 채용 비리는 그 자체를 처벌하는 법이 따로 없기 때문에 흔히 기업의 채용 업무를 방해한 혐의(업무방해죄)로 처벌한다. 항소심 재판부는 “부정 채용은 업무방해죄를 적용하기 때문에 법리에 의하면 채용 비리 피해자는 입사 지원자가 아니라 해당 기업이 된다. 보호 법익이 다르고 일반적인 법 감정에 어긋나는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1심에서 조 회장이 유죄를 선고받은 점에 비춰보면 항소심 재판부가 지나치게 기득권층에 유리한 법 해석을 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 명백한 채용 비리가 이처럼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유무죄를 넘나드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법의 모순이다. 과연 법치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이참에 채용 비리를 분명히 규정하고 그 자체로 엄격히 처벌하는 별도의 법 규정을 만들어 채용 비리를 저지르고도 교묘히 법망을 피해나가는 일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여야 대선 주자들이 청년들과 공감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 의지가 있다면 바로 이런 허점부터 바로잡겠다고 선언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