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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이 중사 고통 외면한 군사법원의 ‘보복협박 무죄’ 판단

등록 2021-12-17 18:59수정 2021-12-17 19:10

성추행을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고 이예람 중사의 아버지가 지난 11월18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성추행을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고 이예람 중사의 아버지가 지난 11월18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성추행을 당한 뒤 숨진 고 이예람 공군 중사 사건 1심 재판에서 군사법원이 가해자에게 군검찰의 구형량 15년보다 낮은 징역 9년을 선고하자 유족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군사법원은 가해자의 성추행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했지만, 피해자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듯한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을 ‘보복 협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성추행을 당한 뒤 불안 속에서 ‘2차 가해’에 시달린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했을 뿐 아니라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군대 내 성폭력을 근절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에 미치지 못하는 판결이다.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은 17일 “피해자의 죽음을 오로지 피고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해도 추행으로 인한 정신적 상해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주요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엄중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가해자 장아무개 중사가 성추행 이후 이 중사에게 ‘사과를 받아주지 않으면 자살하겠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낸 데 대해서는 “사과의 의미를 강조해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소속이었던 이 중사는 지난 3월 초 저녁 자리에 억지로 불려 나가 선임인 장 중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고 동료와 상관들의 회유와 압박 등 ‘2차 가해’에 시달린 끝에 5월21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현장에서 선고를 지켜본 이 중사의 부친은 재판부에 “딸이 생전에 가해자가 죽으면 죄책감을 어떻게 안고 사느냐고 말했었다”면서 가해자의 메시지를 협박으로 인정하지 않은 데 항의했다. 유족은 특히 이 부분이 “부실 초동수사에 면죄부를 준 판결”이라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성추행 피해 뒤 이 중사가 곧바로 신고를 했는데도 군사경찰이 이 문자를 ‘보복 협박’으로 보지 않고 가해자를 불구속 수사하는 등 초동수사 단계의 안이한 판단이 이번 판결에서도 되풀이됐다는 것이다. 군인권센터도 “무죄를 선고한 군사법원의 감수성도 문제이지만, 국방부 검찰단이 ‘보복 협박’의 죄를 입증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던 탓도 크다”며 “총체적 부실 수사의 결과로 어처구니없게도 일부 무죄의 판결이 나왔다”고 비판했다.

이 사건은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고 서욱 국방부 장관이 철저한 진상규명을 약속할 정도로 군 성폭력에 대한 여론의 관심을 환기시켰다. 하지만 지난 10월 마무리된 국방부 검찰단의 조사에서 부실 초동수사 담당자와 지휘부는 한명도 기소되지 않은 채 면죄부를 받았다. 유족들은 줄곧 사건을 재조사할 특검을 요구해 왔고 이번 재판 결과에 대한 항소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2심에선 이 중사와 유족의 고통과 군 성폭력의 구조적 원인을 개선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뜻을 외면하지 말고 더욱 엄격한 잣대로 정의에 다가가는 판결을 내놓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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