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펑(오드리 탕) 대만 디지털 담당 정무위원(장관급)이 2017년 4월12일 서울에서 열린 국제해킹 방어대회 ‘코드게이트’에 참석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 직속 기구인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대만 장관급 인사를 국제 콘퍼런스에 초청해놓고 행사 직전 갑자기 연설을 취소시켰다. 외교적 결례가 아닐 수 없다. 대만 문제는 최근 국제적으로 가장 민감한 외교 사안 중 하나라는 점에서 사려 깊지 못한 처사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대만 외교부는 20일 밤 홈페이지에 성명을 올려, 한국 정부의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지난 16일 개최한 ‘4차 산업혁명 글로벌 정책 컨퍼런스’에서 탕펑(오드리 탕) 대만 디지털 담당 정무위원(장관급)에게 주제 발표를 해달라고 요청해놓고 행사 직전 연설을 취소시켰다고 공개했다. 대만 외교부는 “한국 쪽의 결례와 관련해 주 타이베이 한국대표처 대리대표를 불러 강력한 불만을 표시했고, 한국 주재 대만대표도 우리 정부의 엄정한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대만 언론 보도를 보면, 지난 9월 탕 정무위원에게 화상 연설을 요청한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16일 오전 7시50분(한국시각 8시50분) 이메일로 연설 취소를 통보하면서 “양안(중국-대만) 관계의 여러 측면을 고려했다”는 이유를 댔다고 한다. 행사 개막이 10시인데 불과 1시간을 남겨 놓고 취소 통보를 한 것이다. 탕펑 정무위원이 얼마나 황당했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AI(인공지능) 디지털 전환’을 주제로 연 이번 컨퍼런스는 온·오프라인으로 진행됐는데, 행사 안내 보도자료도 탕펑 정무위원을 ‘대만 디지털부 장관’으로 소개하면서 발표자라고 공지했다. 2017년 설립된 이 위원회는 김부겸 국무총리와 인공지능 전문가인 윤성로 서울대 교수가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대만 장관급 인사가 한국 정부 행사에서 연설하는 데 대해 중국 정부의 반대가 있었거나 아니면 한국 정부가 중국의 반발을 우려해 연설을 취소시킨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자, 외교부는 사태 수습에 고심하고 있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21일 “제반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결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배경은 밝히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이든 대통령 직속 기구에서 다른 나라의 장관급 인사에게 부탁했던 연설을 직전에 취소시킨 것 심각한 외교적 결례다.
‘천재 해커’ 출신이자 대만의 최연소 장관으로 유명한 탕펑 정무위원은 디지털을 기반으로 하는 대만의 혁신과 ‘열린 정부 모델’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지난 9~10일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개최한 ‘민주주의 정상회의’에도 대만 대표로 참석해 연설한 바 있다. 탕펑 정무위원의 지명도와 대만 문제의 민감성이 더해지면서 이번 외교 결례는 국제사회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한국 외교가 미-중 사이의 ‘전략적 모호성’에 빠져 ‘눈치보기 외교’를 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럴 때일수록 외교 원칙과 전략을 정교하게 세우고 세심한 외교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