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천신만고 끝에 제정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이 시행(1월27일)되는 첫해다. 비록 애초 취지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 미완성체이지만, 중대재해법이 현실화하는 것만으로도 산재 사망을 줄이는 데 일조할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를 갖고 새해를 맞았다. 하지만 신년 벽두부터 안타까운 ‘일터 죽음’을 알리는 소식들이 이어진다. 참담한 일이다.
한국전력 하청업체 소속 30대 노동자가 전봇대 작업 도중 고압전류에 감전돼 숨진 사건은 아직도 이런 후진적 사고가 일어나고 있다는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다. 지난해 11월5일 경기도 여주시에서 일어난 이 사고로 김아무개씨는 전신에 3도 화상을 입고 치료받다 같은 달 24일 숨졌는데, 김씨가 올봄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는 사연과 함께 최근 언론에 보도되면서 알려졌다. 안전 규정상 2인1조로 해야 하는 작업을 김씨 혼자 했고, 2만2천볼트의 고압전류를 다루면서도 고무 절연장갑이 아닌 면장갑을 끼고 있었다. 또 고압전기 작업에 사용하는 절연고소작업차 없이 일반 트럭을 이용했다고 한다. 안전 조처가 총체적으로 부실했던 것이다.
김용균·이선호씨 등 수많은 비극적 죽음으로 산업안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중대재해법 제정이라는 제도적 경고가 이뤄졌음에도 위험한 고압전기를 다루는 작업이 이렇게 안전장치도 없이 허술하게 진행됐다니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어느 기업보다 안전에 힘써야 할 공기업인 한전의 하청업체에서 벌어진 사고라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크다.
이뿐만이 아니다. 새해 첫날 경기도 안산시의 한 골판지 제조공장에서 40대 노동자가 기계에 끼이는 사고로 숨졌다. 지난달 31일에는 인천의 한 물류센터 건설 현장에서 60대 노동자가 10m 아래로 추락해 사망했다. 이 노동자는 추락방지용 안전고리를 착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기업들과 현장의 안전 불감증이 여전한 것이다.
중대재해법이 적용 범위나 처벌 수위 등에서 후퇴해 실효성이 떨어졌지만, 법 적용이라도 엄격히 함으로써 산업안전 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끌어올려야 한다. 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개정 작업도 서둘러야 한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인 만큼 대선 후보들도 구체적 공약을 통해 명확한 의지를 밝히고 유권자들의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지난해에도 800명 가까이 일터에서 생명을 잃었다. 이보다 시급한 민생 현안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