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억씨는 2019년 7월 말부터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현대·기아차의 불법 파견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시정명령을 할 것을 요구하면서 47일간 단식 투쟁을 했다. 단식 30일째(8월27일)의 김수억씨. 한겨레티브이 김도성 피디 kdspd@hani.co.kr
대법원의 불법 파견 판결에도 정규직 전환이 이뤄지지 않는 것에 항의해 농성과 시위를 벌인 현대·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유죄가 선고됐다. 문제 제기에 앞장서온 김수억 전 금속노조 기아차 비정규직지회장에게는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나머지 16명도 징역형의 집행유예와 벌금형에 처해졌다. 법원 판결로 불법임이 선언된 비정상적 고용 형태를 정상화하지 않은 기업 쪽은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는 반면, 이에 항의한 노동자들은 그 행위의 형식적 법 위반을 이유로 무거운 형벌을 받은 것이다. 법이 실현하고자 하는 정의가 무엇인지 되묻게 한다.
2010년 대법원 판결을 필두로 법원은 현대·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낸 소송에서 수십차례에 걸쳐 불법 파견 판결을 내려왔다. 그럼에도 회사 쪽은 정규직 전환을 하지 않았다. 정부는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내리고 검찰에 기소 요청까지 할 수 있지만, 이런 권한도 행사하지 않았다. 그러다 현 정부 들어 고용노동부 장관 자문기구로 설치된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가 2018년 7월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내리도록 권고했고,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노동부의 시정명령과 검찰 수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김수억 전 지회장 등은 이 과정에서 고용노동청·검찰청 등에 무단으로 들어가고, 신고 범위를 벗어나 도로를 행진하고, 경찰관들과 몸싸움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김 전 지회장에게 징역 5년을 구형하는 등 17명에게 도합 21년2개월에 이르는 징역형을 구형했다.
이에 견줘, 사태의 원인 제공자인 회사 쪽에 대한 정부와 검찰의 대응은 솜방망이에 그쳤다. 불법파견 시정명령은 2019년에야 이뤄졌다. 그마저 회사 쪽은 정규직 전환이 아닌 조건부 신규 채용이라는 ‘꼼수’로 대응하고 있다. 형사 처벌은 같은 해 박한우 전 기아차 사장이 불법 파견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게 전부다.
이날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주장 자체에 대해선 이의가 없다”면서도 “대외적으로 주장을 제시하는 방법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날 순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에도 불법 상태가 시정되지 않는 현실에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한 대가치고는 지나치게 가혹하다. 대기업·정부·검찰이라는 거대한 권력이 법을 제대로 따르지 않으면서 사회적 약자의 최후 수단인 집회·시위에만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그것은 정의를 외면한 법치일 뿐이다.